우연의 일치일까, 예견된 부진일까. 지난해 시즌 후 프리미어12에 참가한 국가대표 투수들이 2020시즌 집단 부진에 빠졌다. 나라를 위해 비시즌 휴식도 반납하고 올림픽 진출 티켓을 가져왔지만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프리미어12에 참가한 투수는 모두 13명으로 좌완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양현종(KIA), 차우찬(LG), 이승호(키움), 함덕주(두산), 우완 이용찬, 이영하(이상 두산), 하재훈(SK), 조상우(키움), 문경찬(KIA), 고우석(LG), 언더핸드 원종현(NC), 박종훈(SK)이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김광현을 제외한 12명의 투수들은 올 시즌에도 KBO리그에서 뛰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 투수들이 전년 대비 성적 하락이 심각하다. 김광현을 뺀 나머지 12명의 투수들 도합 평균자책점이 지난해 3.34에서 올해 5.41로 치솟았다. 리그 평균자책점이 4.17에서 4.88로 상승했지만 국가대표 투수들의 상승폭은 훨씬 크다.

지난해 평균자책점 1위(2.29)였던 양현종은 올해 5.88로 이 부문 규정이닝 투수 23명 중 22위에 그치고 있다. 2군에도 다녀온 차우찬(4.12→5.34), 박종훈(3.88→4.96), 이영하(3.64→5.62), 이승호(4.48→6.12) 등의 평균자책점 최소 1점 이상 크게 올랐다. 양현종, 차우찬의 경우 누적 이닝이 많은 30대 베테랑들이라 에이징 커브가 찾아올 수 있는 시기이고, 20대 초반 이영하와 이승호는 지난해 첫 선발 풀타임 시즌이었다.

구원투수들은 더 심각하다. 처음으로 국가대표에 발탁됐던 하재훈(1.98→7.62), 문경찬(1.31→5.32), 고우석(1.52→10.29)의 성적 폭락은 예상했던 범주를 벗어났다. 하재훈은 투수 데뷔 첫 시즌이었고, 문경찬과 고우석은 풀타임 마무리 첫 해였다. 원종현(3.90→5.01)과 함덕주(3.46→3.77)도 지난해 같은 안정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부상 선수도 발생했다. 지난해 26경기 148이닝 평균자책점 4.07을 기록한 이용찬은 5경기 26⅔이닝 만에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고 시즌 아웃됐다. 올 시즌 평균자책점 8.44로 부진했다. 고우석도 지난 5월 무릎 수술을 받고 2개월 동안 재활을 거쳤다. 차우찬마저 지난달 말 어깨 통증 속에 좌측 견갑하근 염좌로 3주 재활 진단을 받았다.
국가대표 선수 선정 기준은 당연히 ‘성적’이다. 국가대표 선수라면 그해 많은 경기와 이닝을 던지며 좋은 활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긴 시즌 후 열리는 국제대회로 인해 피로가 두 배로 누적된다. 프리미어12의 경우 예선부터 본선 그리고 결승까지 12일 동안 총 8경기로 일정이 타이트했다. 다음 시즌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대표팀에서 아무리 관리한다고 해도 중압감 높은 대회에 선수들의 피로도는 가중된다.

그렇다고 올림픽 진출 티켓이 걸린 중요한 국제대회를 외면할 수 없다. 올해 같은 경우는 예외 케이스에 가깝다. 올해처럼 베테랑, 젊은 선수 가릴 것 없이 집단으로 성적이 떨어진 전례가 없다. 코로나19로 시즌 개막이 한 달 넘게 늦춰져 회복할 시간도 있었지만 효과는 없다. 시즌 반환점을 지난 시점에서 눈에 띄는 반등세를 찾기 어렵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선수가 조상우다. 지난해 48경기 47⅓이닝을 던지며 2승4패20세이브8홀드 평균자책점 2.66으로 대표팀에 발탁된 조상우는 올 시즌도 26경기 28⅔이닝을 던지며 3승1패17세이브 평균자책점 0.63으로 특급 성적을 내며 최강 마무리로 활약 중이다. 그런 조상우도 지난 2015년 첫 프리미어12에 참가한 뒤 이듬해 팔꿈치 인대접합수술과 주두골 피로골절수술을 받아 시즌 아웃된 경험이 있다. /waw@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