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위 경쟁 팀 감독의 자진 사퇴. 이러한 촌극이 또 어디 있을까.
9일 현재 kt 위즈에 1게임 차로 뒤진 3위에 머물러 있는 키움 히어로즈의 정규 시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도 아니다. 치열하게 순위 싸움을 벌이면서 여전히 2위 경쟁을 하고 있다. 1위 NC 다이노스를 따라잡기에는 힘에 부치는 거리로 벌어졌지만(8게임차) 가을 무대 진출은 가시권에 두고 있다. 그런데도 느닷없이 선수단을 지휘하던 감독이 물러났다.
올해 유독 부상 변수가 많았지만 상위권을 유지했던 손혁 키움 감독은 시즌 종료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지휘봉을 내려놨다. 그는 성적 부진 때문이라고 짤막하게 사퇴의 변을 언급했다. 상식적인 거취 판단이 아니다. 시즌 막판에 이처럼 감독이 돌연 사퇴하는 일은 KBO리그 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해괴한 사태다.

키움 구단은 8일 오후 3시 무렵 '손혁 감독의 자진 사퇴 보도자료 보내드립니다.'는 제목을 달고 감독의 전격적인 사퇴 내용을 공식적으로 외부에 알렸다.
보도자료는 "키움히어로즈(대표이사 하송) 손혁 감독이 지휘봉을 놓는다. 손 감독은 7일(수)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NC다이노스와의 경기가 종료된 후 김치현 단장과 면담을 갖고 감독 사퇴 의사를 전달했다. 키움은 내부 논의를 거쳐 8일(목), 손 감독의 자진 사퇴 의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자체 정리했다.
보도자료는 부연해서 손 감독은 “최근 성적 부진에 대해 감독으로서 책임을 지고 사퇴 의사를 구단에 전달했다. 저를 감독으로 선임해준 구단에 감사하다. 기대한 만큼 성적을 내지 못해 죄송하다. 기대가 많았을 팬들께 죄송하고 선수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악스런 상황을 설명한 것치고는 너무 미흡하다.
손혁 감독이 사퇴한 배경이나 원인에 대해 당사자나 구단측이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고 있어 여러 억측이 나오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만큼 몰상식적인 돌발 사건이기 때문이다. 유추는 두갈래다. 손혁 감독이 무책임 하거나, 아니면 외압에 도저히 견디지 못해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김치현 키움 단장은 “코로나19로 정규 시즌 개막이 늦춰졌고 많은 부상자가 나온 시즌이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손혁 감독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선두다툼을 벌였다. ‘성적 부진’이 구차한 변명인 이유다.
김 단장은 이어 “잔여 경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치열한 순위 싸움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현장과 프런트의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는 마치 손혁 감독이 소통부족으로 물러난 듯한 뉴앙스를 풍긴다.
그렇지 않다면, 캠프 때부터 지금까지 코치진, 선수들과 뜻을 모은 감독의 자진 사퇴를 강하게 만류 하지 않은 구단의 태도가 지적을 받아야 마땅하다.
게다가 지금까지 치열하게 팀을 이끈 감독이 물러난 자리에는 현장 경험이 거의 없는 인물이 앉았다. 그 또한 상식적이지 않다.
김 단장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야구를 통해 최선의 결과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부상으로 신음해야 했던 마운드, 4번 타자의 공백이 ‘데이터 야구’로 충족될 수 있을까.
키움 구단은 김창현 감독대행을 두고 “데이터 분석 능력이 탁월하다”고 했다. 데이터 분석 지원은 꼭 감독만이 할 일이 아니다. 전력 분석 팀이 따로 존재한다. 프로야구 감독은 데이터만 가지고 지탱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래서 김 대행이 선수 한 명 한 명을 얼마나 잘 헤아려 남은 시즌을 꾸려갈 수 있을지 강한 의문이 남는다.
키움 구단은 정규 시즌 막바지에 선수단에 혼란만 주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비록 김창현 대행이 올해 선수단 이해도가 높고 데이터 분석 능력이 탁월해 퀄리티컨트롤 코치를 맡았다고 하지만 혼란스러운 상황을 잘 추스리고 손혁 전 감독 이상의 리더십을 보여주며 더 높은 곳을 향할 수 있을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야구인들이 많다.
한 야구인은 "키움 구단의 상층부가 손혁 감독에게 그동안 유무언의 간섭과 압박을 가한 결과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라며 "이런 식으로 지도자를 내치는 일은 현장 지도자를 너무 무시하는 것"이라고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시즌을 마무리하지도 못하고 갑자기 사퇴한 손혁 감독을 결과적으로 무책임한 지도자로 만들어버린 키움 프런트야말로 오히려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하는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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