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골프대회의 자존심, ‘제네시스 챔피언십’이 추구하는 가치는 ‘세계적 수준’이다. 국내 최고 수준의 상금(총상금 15억 원)과 최고 수준의 선수들, 그리고 세계적 수준에 어울리는 난이도 높은 골프 코스 등이 이 대회를 유지하는 기준이다. 이런 대회에서 우승하는 선수도 당연히 최고 기량을 갖춘 선수여야 한다. 나흘간의 대회 기간 중 하루 반짝해서 오를 수 있는 고지가 아니라 한발한발 꾸준히 전진하는 선수에게 우승컵이 주어지는 게 대회의 취지와 어울린다.
이런 측면에서 ‘제네시스 챔피언십’ 2020년 대회는 바람직한 결과를 내놓았다.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를 대표하는 베테랑 김태훈(35)이 4라운드 내내 고른 성적을 올린 끝에 우승컵까지 거머쥐었다. 올 시즌 첫 우승이지만 우승상금 3억 원을 보태면서 올 시즌 상금 순위 선두로 도약했다. 대상포인트도 선두 김한별을 간발의 차로 바짝 쫓았다.
2013년 보성cc 클래식에서 첫 승을 올린 김태훈은 2015년 카이도골프 LIS 투어챔피언십, 2018년 동아회원권그룹 부산오픈 우승에 이어 개인 통산 4번째 우승 영예를 안았다.

11일 인천 송도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 어반, 링크스코스(파72. 7,305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라운드에서 김태훈은 1오버파를 쳤지만 나흘간의 기복없는 플레이로 최종합계 6언더파 282타(70-68-71-73)를 적어내며 우승했다.
최종라운드에서 김태훈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4번홀에서 첫 버디를 잡아내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5번 이후 10번홀까지 4개의 보기를 범하며 흔들렸다. 3라운드까지 벌어둔 7언더파가 4언더파까지 떨어졌다. 김태훈에겐 다행스럽게도 이 시점에는 딱히 선두를 위협하는 경쟁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코스세팅이 하루 반짝이는 선수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태훈의 결자해지 의지는 13번홀부터 빛을 냈다. 178미터 파 3홀에서 핀 뒤쪽 경사에 맞은 공이 홀컵쪽으로 타고 내려오는 절묘한 티샷을 성공시키며 버디를 만들어냈다. 이 홀에서 실마리를 푼 김태훈은 파4 14번홀 연속 버디로 우승 분위기를 다졌다.
김태훈과 같은 조에서 경기한 박상현과 조민규는 최종라운드에서 각각 2오버파, 4오버파로 부진했고, 앞선 조에서 경기한 이재경이 이날만 3타를 줄이며 김태훈을 위협했다. 하지만 이재경도 18번홀 짧은 버디 퍼트를 놓치면서 김태훈을 마지막까지 압박하지는 못했다. 이재경은 최종합계 4언더파로 단독 2위에 올랐다. 코스 세팅이 무척 까다로워 대회가 끝났을 때 최종합계에서 언더파를 기록한 선수는 5명에 불과했다.

2년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린 김태훈은 “주니어 시절에는 국가대표도 하고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0세부터 29세까지 드라이버 입스로 인해 정말 힘들었다. 부모님과 가족 모두 힘들어했다. 다행히 2013년 ‘보성CC 클래식’에서 우승하며 반등할 수 있었다. 사실 2013 시즌 개막 전까지 ‘이번 해도 잘 안 되면 선수 생활을 그만둬야겠다’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 우승으로 인해 지금까지 투어 활동을 이어가게 됐다. 입스가 한 번 오면 완벽하게 극복하기 힘들다. 지금도 어느 정도 두려움은 있다. 하지만 잘 이겨내고 있다. 가장이 되다 보니 책임감이 생긴 것도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소감을 말했다.
김태훈은 2017년 결혼해 지난해는 아들도 얻었다. 김태훈은 “결혼을 정말 잘 했다. 아내를 잘 만난 것 같다. 편안하게 선수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주변 지인이나 아버지와 골프에 대해 많은 상의를 했는데 지금은 혼자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김태훈은 이번 대회 우승으로 상금 3억 원과 함께 대형 럭셔리 SUV 제네시스 GV80를 부상으로 받았고, ‘2021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과 ‘더 CJ컵’ 출전권을 확보했다. 김태훈은 ‘더 CJ컵’ 출전권은 고사하기로 했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