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타 앞선’ 안나린과 ‘9타 몰아친’ 유해란, 안나린 생애 첫 우승
OSEN 강희수 기자
발행 2020.10.11 19: 06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4년차 안나린(24, 문영그룹)이 ‘2020 오텍캐리어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우승에 성공했다. 11일, 세종특별자치시 세종필드 골프클럽(파72. 6,598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라운드에서 이븐파를 적어내 최종합계 16언더파 272타(70-65-65-72)로 우승했다.
안나린의 최종합계 16언더파는 3라운드 중간합계 성적과 같다. 그런데도 우승에 이를 수 있었던 이유는 3라운드에서 이미 2위 고진영과 10타차를 벌려 놓은 덕분이다.
최종라운드 선두주자가 10타차로 출발하는 그림은 흥행 주체가 상상하기 싫은 설정이다. 우승자를 이미 정해놓고 최종라운드를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근래 있었던 KLPGA 투어에서 8타차 역전극은 있었지만 10타차 뒤집기는 없었다.

안나린이 4번홀에서 드라이버 티샷을 날리고 있다. /KLPGA 제공.

그런데 대회를 지켜보는 이들은 아무도 ‘김빠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선두주자 안나린이 투어 4년차이기는 하지만 생애 첫 우승을 노린다는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선두를 쫓는 추격자군에는 고진영 임희정 박결 유해란이 포진하고 있었다. 챔피언조에서 함께 경기를 펼친 고진영은 세계 랭킹이 1위인 선수다. 뭔가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할만했다. 
10타차 역전극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앞선자가 극도의 컨디션 난조에 시달려야 하고, 추격자는 앞선자의 눈앞에서 타수를 줄여가며 심리적으로 압박해야 한다.
일단 안나린의 컨디션은 썩 좋지 못했다. 챔피언조의 심리적 압박이 작용한 듯했다. 전반 9개홀 동안 버디 없이 보기 1개만 적어냈다. 그런데 같은 시간, 안나린을 압박해야 할 고진영이 보기 1개, 버디 1개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었다.
후반부에 대역전극이 벌어질 수 있는 여건이 한 차례 형성되기는 했다. 고진영이 12, 13번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을 때 안나린은 연속 보기를 범했다. 이 분위기가 계속됐으면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너무 늦게 벌어진 데다, 안나린도 마음을 다잡았기 때문이다. 
안나린은 갑자기 평정심을 되찾고 14번홀부터 버디 사냥을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경기 후 인터뷰에서 안나린이 밝힌 내막이 눈길을 끈다. 안나린은 “13번홀에서 보기를 하고 14번홀로 가는데 리더보드가 눈에 들어왔다. 유해란이 2타차까지 쫓아온 게 보이더라. 정신이 버쩍들어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이 덕분인지 안나린은 파5 14번홀에서 버디를 잡았고 17, 18번홀에서도 연속 버디를 낚아 우승을 확정지었다. 이런 정도의 멘탈이었다면 처음부터 안나린의 챔피언조 스트레스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뻔했다.
안나린을 움찔하게 한 유해란은 이날 무려 9타를 줄였다. 보기 없이 버디로만 올린 성적인데 3미터 내외의 버디 퍼트가 신들린 듯이 홀컵에 쑥쑥 빨려 들어갔다.
안나린은 “꿈에 그리던 우승을 하게 돼 정말 기쁘다.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 모든 것에 감사한 하루다. 부모님께서 많이 힘드실텐데 끝까지 믿고 뒷바라지하셨다. 아버지는 김포에서 항공업 쪽에 계시고, 어머니는 늘 나와 동행하셔서 5살 어린 여동생이 항상 혼자 집에 있다. 동생에게 많이 고맙다”고 말했다. 덧붙여 안나린은 “공격적인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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