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마무리투수 정우람(35)에게 2020년은 어느 때보다 힘든 해였다. 시즌 16세이브를 올렸지만 평균자책점 4.80은 데뷔 첫 해였던 2004년(6.75) 이후 가장 높았다. 팀이 시즌 초부터 꼴찌로 추락하며 등판 간격이 들쑥날쑥했고,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다. 6월24일 대구 삼성전에선 비 내린 마운드에서 미끄러져 발목을 다치는 불운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든 건 바로 트레이드설이었다. 8월15일 트레이드 마감일이 지나기 전까지 끊임없이 루머가 돌았다. 마무리 활용도가 낮은 꼴찌팀이자 리빌딩이 시급한 한화, 불펜이 필요한 상위팀들의 사정이 맞물리면서 정우람 트레이드설이 공론화됐다. 베테랑 정우람도 마음을 다잡는 데 애를 먹었다.
트레이드는 결국 루머로 끝났고, 정우람은 한화에 남았다. 마음고생하게 한 트레이드설도 이제는 웃으며 넘길 수 있게 됐다. 지난 9월말 정우람은 “시간이 약이다. (트레이드 루머) 당시에는 저도 사람이라 마음이 복잡했지만 지나고 나니 추억이다. 트레이드를 주장하신 팬들도 팀 미래를 위해, 한화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생각하신 것이다”며 “앞으로 한화에서 해야 할 일 많다. 팀에서 좋은 대우를 해준 만큼 충성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시즌 최종전을 마친 뒤 인터뷰에도 정우람은 “팬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김)태균이 형이 은퇴하면서 팬들께 기대에 못 미쳐 죄송하다고 말씀했는데 저 역시 마찬가지다. 한화에서 야구를 시작한 건 아니지만 좋은 계약을 한 만큼 팀에 책임감을 느낀다. 팬들께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 팀이 발전하고, 젊은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게 내 역할을 잘하겠다”는 진심을 전했다.
2004년 SK에서 프로 데뷔한 정우람은 2015년 시즌 후 구원투수 역대 최고 4년 총액 84억원에 FA 계약하며 한화에 왔다. 지난해 시즌 후에도 한화와 4년 총액 39억원에 FA 재계약을 맺었다. 구단으로부터 좋은 대우를 받은 만큼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다.

우여곡절이 많은 해였지만 정우람은 올해도 변함없이 50경기를 채웠다. 시즌 최종전이었던 지난달 30일 대전 KT전에서 11년 연속 5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다. 군복무 기간(2013~2014년)을 제외하면 SK 시절이었던 2008년부터 올해까지 50경기 이상 큰 부상 없이 꾸준히 마운드에 올랐다. 13년 연속 50경기 이상 출장한 전 SK 투수 조웅천(1996~2008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 기록.
정우람은 “항상 이 마운드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다. 부상 관리에 신경을 썼고, 하루하루 지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기에 내게 뿌듯하고 소중한 기록이다. 12년 전(2007년) 45경기밖에 나가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이를 계기로 체인지업을 배워 여기까지 왔다. 기록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창단 첫 10위로 추락한 한화이지만 시즌 중후반 젊은 투수들의 성장은 희망적이었다. 특히 불펜에서 강재민(1승2패1세이브14홀드 2.57), 윤대경(5승7홀드 1.59), 김진영(3승3패8홀드 3.33), 김종수(1승1패1세이브7홀드 5.94) 등 젊은 투수들이 급성장하며 필승조를 구축했다. 9월 이후 한화의 구원 평균자책점은 4.17로 리그 전체 3위였다.

정우람도 후배들의 성장세를 피부로 느꼈다. 그는 “2군에서 고생한 후배들이 기회를 잘 잡았다. 후배들이 열심히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긴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팀이 경쟁 체제로 가는 첫걸음이 된 것 같다. 계속 이어진다면 내년에 좋은 성적이 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경쟁해야 하는 위치가 될 수 있다”는 말로 내년을 다짐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