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플레이오프 1차전을 내준 뒤 맞이한 ‘벼랑 끝’ 경기에서 한 이닝에만 7실점하며 1루 쪽 홈 팬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LG.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라는 야구 명언이 무색할 정도로 ‘직관’ 온 팬들은 암울한 분위기었다.
솔직히 기자도 정신이 없었다. 가을을 즐기며 휘몰아치는 두산 선수들의 환호만 추려 기사로 내면 경기가 끝나있을 것 같았다. LG를 볼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바로 앞 수비에서 7실점하며 0-8로 맞이한 LG의 4회말 공격. 마운드에는 올 시즌 리그 유일의 20승 투수 라울 알칸타라가 버티고 있었다. 선두타자는 시즌 38홈런을 쏘아올리며 LG 구단 역대 최다 기록을 세운 로베르토 라모스. 홈런을 쳐도 이 경기의 분위기를 바꿀 수 없을 것이라 봤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야구는 각본 없는 드라마’ 라는 말이 또 맞았다.
초구에 딱 하는 순간 잠실 야구장의 모든 사람들이 홈런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8점차의 여유, 긴 대기시간에 알칸타라가 방심했거나 공이 밋밋했을 거라고.
진짜 반전은 라모스의 포효와 세리머니였다. 그의 액션은 LG 더그아웃을 깨웠고, 직관 온 LG 팬들도 깨웠다. 티켓값 아깝지 않게 만드는 선물이었다. 7점차로 좁히는 솔로홈런인데 세리머니는 그랜드슬램 급이었다.




5회말 김현수의 추격의 투런포 이후 들어선 타석에서 또 다시 우월 솔로포. 연타석이자 백투백 홈런. 라모스는 더 크게 포효했고 잠실 1루는 들끓었다. 절정의 실력에 걸맞는 절정의 세리머니 팬서비스를 보여줬다.







경기는 8-0 → 8-7 → 9-7 스코어 접전 끝에 두산이 승리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두산 팬들은 가을 야구를 더 즐길 수 있게 되었고, LG 팬들은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은 류중일 감독과 '리빙 레전드' 박용택의 현역 선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무기력하게 포기하지 않았음에. 직관 온 LG 팬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내년을 기약하지 않았을까.



‘코로나19’ 를 뚫고 가을 야구, 아니 겨울 야구를 보러 잠실까지 온 팬들의 선수 사랑, 팀 사랑, 야구 사랑은 말할 필요 없이 각별하다.
프로는 결과로 말한다지만, 과정 없는 결과도 없다. 모든 경기를 다 이길 순 없지만, 팬 없는 승리는 의미 없다.
툭하면 프로야구 선수들의 팬서비스 논란이 터진다. 승패를 떠나 팬들을 향한 라모스의 세리머니와 포효는 그래서 더 각별했고, 팬 사랑으로 먹고 사는 프로 선수의 의무다. /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