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화 이글스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치욕’이다. KBO리그 역대 최다 타이 18연패 충격 속에 감독 교체와 창단 첫 10위 추락. 안 좋은 것은 다 나온 해였다.
두 번의 사과문이 올해 한화의 모든 것을 말한다. 지난 6월 14일 18연패를 끊은 날, 한화는 ‘야구를 너무 못해서’ 첫 사과문을 발표했다. ‘분골쇄신’을 외치면서 구단 정상화를 다짐했지만 9월 3일 두 번째 사과문으로 이마저 무색해졌다. 팀 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과정에서 미흡한 대처로 논란을 키웠다. 결국 박정규 대표이사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동안 쌓이고 쌓인 문제가 한꺼번에 손 쓸 틈도 없이 터졌다. 2009년부터 최근 12년간 6번이나 리그 최하위에 그친 한화는 ‘꼴찌의 대명사’로 전락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표현대로 ‘팬들의 눈물마저 마른 꼴찌팀’이 현실에 존재한다. 그게 바로 지금의 한화다.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잃을 게 없는 한화는 시즌 막판부터 대대적인 팀 개혁을 준비했다. ‘레전드’ 김태균의 현역 은퇴가 그 신호탄이었다. 팀을 위해 결단을 내린 김태균의 은퇴로 한화는 큰 추진력을 얻었다. 김태균이 은퇴했는데 나머지 베테랑들이 남아있을 명분이 없었다. 새로운 팀으로 완전하게 탈바꿈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시즌 후 이용규를 비롯해 주축 베테랑 선수들이 한꺼번에 정리됐다. 시즌 도중 물러난 한용덕 감독에 이어 장종훈, 송진우 등 프랜차이즈 코치들과도 결별했다. 선수와 코치진뿐만 아니라 프런트도 큰 폭으로 개편됐다. 정에 휩쓸리지 않고 싹 다 바꿨다. 이번에 제대로 쇄신하지 않으면 끝이란 절박함이 작용했다.

구단 첫 40대 박찬혁 대표이사가 선임된 뒤 개혁 드라이브에 속도를 냈다. 그동안 보수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구단 최초의 외국인 감독 카를로스 수베로를 선임했다. 주요 보직에 외국인 코치들이 가세하며 그동안 시도하지 않은 새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
최악의 시즌에도 가능성을 보여준 유망주들이 한화의 희망이다. 투수 김민우, 김범수, 강재민, 윤대경, 내야수 노시환, 박정현, 조한민, 외야수 임종찬, 최인호 등 20대 초중반 유망주들이 자리를 잡거나 잠재력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마이너리그 15년 감독의 ‘육성 전문가’ 수베로 감독과 외국인 코칭스태프의 선진적인 지도 효과가 더해진다면 무섭게 폭발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외국인 감독은 마법사가 아니다. 감독 하나 바뀐다고 모든 게 단숨에 해결될 수 없다. 구단의 선수 수급과 지원은 필수다. KBO리그에선 리빌딩이 방패막이가 될 수 없다. 매년 말로만 하는 리빌딩, 세대교체, 뎁스 강화는 허망한 구호에 그쳤다. 현장과 프런트의 불협화음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돌아가길 반복한 게 어언 10년이 지났다.
이제는 현장과 프런트, 구단 고위층까지 모두 인내를 갖고 한 곳을 바라보며 체계적으로 협업해야 한다. 고행의 길이 되겠지만 그래도 올해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18연패의 치욕을 잊지 않고 혁신의 첫걸음으로 삼아야 할 2020년이다. /waw@osen.co.kr
![[사진]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 /한화 이글스 제공](https://file.osen.co.kr/article/2020/12/19/202012191952779609_5fde47082273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