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루 찬스가 마련됐지만 이닝이 끝났다. 타석에 들어서던 다음 타자 라이온 힐리(한화)는 배트 한 번 휘두르지 못한 채 덕아웃으로 발길을 돌렸다. 메이저리그식 특별 규칙이 낳은 진풍경이었다.
9일 대전 KIA-한화전. 비공식 연습경기이지만 KBO리그 최초의 외국인 감독 맞대결로 시선을 모았다. 한국에서 2년차가 된 맷 윌리엄스 KIA 감독과 새롭게 부임한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이 경기 전 그라운드에서 만남을 갖고 양 팀간 4차례 연습경기 특별 규칙에 합의했다.
윌리엄스 감독은 “연습경기에서 투수들의 이닝을 어떻게 끊을지 수베로 감독과 이야기했다. 투수를 관리해야 할 시기라 양 쪽 모두 투구수 기준으로 이닝 교대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 이닝에서 투수의 투구수가 15~20개를 넘길 경우 아웃카운트에 관계없이 다음 이닝에 넘어가기로 합의한 것이다.

특별 규칙은 이날 경기 승부처에서 발동됐다. 한화가 0-3으로 뒤진 5회말. 최인호의 안타, 정은원의 2루타에 이어 하주석이 풀카운트 승부 끝에 볼넷을 골라내 2사 만루 찬스를 만들었다. 다음 타석은 한화의 4번타자 힐리. 무득점 침묵을 깰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그 순간 이닝이 끝났다. KIA 투수 김현준이 5회 5명의 타자를 상대로 24개의 공을 던진 상태. 20개 투구수를 넘긴 하주석 타석까지 마친 뒤 특별 규칙으로 이닝이 종료됐다. 만루 찬스를 만들고도 공격을 이어가지 못한 한화는 9회까지 무득점으로 침묵하며 0-3으로 졌다. 힐리는 8회 선두타자로 나와 우중간 가르는 2루타로 아쉬움을 달랬다.
![[사진] 윌리엄스 KIA 감독과 수베로 한화 감독(왼쪽부터) /한화 이글스 제공](https://file.osen.co.kr/article/2021/03/09/202103091956775576_604790ac20980.jpeg)
생소한 장면이지만 승패가 중요하지 않은 연습경기라 가능한 일이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투수들의 컨디션 관리와 보호가 중요한 만큼 무리할 필요가 없다. KIA는 지난해 윌리엄스 감독 부임 후 2년째 자체 연습경기를 같은 방식으로 진행했다. 수베로 감독도 자체 연습경기에선 투구수에 따라 임의로 이닝을 끝냈다. 양 팀은 10일 대전에서, 13~14일 광주에서 연습경기가 예정돼 비슷한 장면이 또 나올 수도 있다.
한편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정식 시범경기에도 특별 규칙을 시행하고 있다. 올해부터 양 팀 감독 합의하에 5~7이닝 단축 경기를 치르면서 투수가 한 이닝 20구 이상 던질 경우 3아웃 전에도 공수 교대가 가능한 룰을 포함했다. 교체된 투수가 다시 등판할 수도 있다. 시범경기 초반인 1일부터 14일까지 특별 규칙으로 운용된다.
한국인 투수 김광현(세인트루이스)도 특별 규칙으로 한 경기에 두 번이나 마운드에 오르는 낯선 경험을 했다. 올해 두 차례 시범경기에서 1회 투구수 20개가 넘어가자 이닝 도중 구원투수로 교체된 뒤 2회 재등판을 반복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