⅔이닝 59구.
두산 새 외국인투수 아리엘 미란다(32)가 혹독한 KBO리그 신고식을 치렀다. 시속 150km의 직구를 던지는 좌완투수로 주목을 받았지만, 가장 중요한 제구력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미란다는 지난 2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화와의 시범경기에 선발 등판해 ⅔이닝 3피안타 5볼넷 2탈삼진 7실점으로 크게 흔들렸다.

지난 시즌 최하위 한화를 상대로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을 남발했다. 1회 시작과 함께 3연속 볼넷으로 자초한 무사 만루서 2타점 적시타를 맞은 뒤 밀어내기 볼넷과 적시타 두 방을 추가로 허용하며 1회를 다 마치지 못하고 마운드를 넘겼다. 당초 한계 투구수를 60개로 설정했는데 1회에만 59개를 던지며 이를 일찌감치 채웠다. 스트라이크(30개)와 볼(29개)의 비율이 사실상 1대1을 이루는 제구 난조에 시달린 결과였다.
미란다는 지난해 12월 총액 80만달러에 두산 유니폼을 입은 쿠바 출신의 좌완투수다. 입단 당시 크게 3가지의 장점이 부각됐다. 높은 타점에서 구사하는 위력적인 직구와 함께 슬라이더, 포크볼, 커브, 체인지업 등 다양한 변화구를 보유, 두산 선발진에서의 성공이 점쳐졌다. 김태형 감독의 경우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 대만프로야구 중신 브라더스 등에서 뛰며 동양 야구를 익힌 부분을 가장 높이 샀다. 그만큼 KBO리그도 빠르게 적응할 것이란 계산에서 나온 기대감이었다.
스프링캠프 평가도 좋았다. 두 차례의 라이브피칭을 통해 구위에서 합격점을 받았고, 고척에서 진행된 키움과의 연습경기에선 150km의 묵직한 강속구와 함께 2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순조로운 개막 준비를 알렸다. 당시 강속구뿐만 아니라 낙차 큰 포크볼을 이용해 타자들의 헛스윙을 유도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첫 시범경기에선 그러한 장점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구속과 제구 사이의 딜레마가 느껴졌다. 구속을 높이기 위해 힘을 주면 제구가 흔들렸고, 제구를 신경 쓰려고 구속을 낮추면 타자들에게 맞아나가기 일쑤였다. 변화구의 경우 스트라이크존에서 크게 벗어나며 역시 효과를 보지 못했다. 무엇보다 장기인 직구의 커맨드가 크게 흔들리면서 투구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두산은 아직까지 바뀐 외국인투수 2명이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에이스로 꼽히는 워커 로켓 역시 지난 17일 LG와의 연습경기서 2이닝 3실점으로 흔들렸다. 이를 통해 미란다의 개막전 선발 등판에 무게가 실렸지만, 실망스러운 투구로 이 역시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여기에 이영하, 유희관, 최원준, 김민규, 함덕주 등이 경쟁을 펼치는 토종 선발진 역시 아직까지 확실한 3명을 구하지 못한 상황. 선발진 전체에 물음표가 가득하다.
위안을 찾자면 정규시즌이 아닌 리그 적응 과정인 시범경기에서 최악의 투구가 나왔다는 것이다. 4월 초 개막시리즈까지는 아직 약 열흘의 시간이 남아 있다. 그러나 시범경기는 정규시즌의 리허설이라고 말한다. 리허설은 어떤 실수를 해도 용납되지만, 리허설이 불안하면 본 공연도 불안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다. 믿었던 미란다의 최악투에 김태형 감독의 고민이 깊어졌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