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디젤’? 그때는 맞았고 지금은 틀리다. 저 등식이 처음부터 만고의 진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유류세 정책과 맞물려 탄생한 일시적인 관습일 뿐이다.
디젤엔진이 미세먼지 발생의 주범으로 찍히면서 ‘SUV=디젤’이라는 등식은 더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오랜 관습이 하루 아침에 바뀌기는 어렵다. 인식의 전환은 순차적으로 일어나기에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앞당기는 방법은 있다.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디젤 SUV가 갖고 있던 장점을 대체할 만한 방안이 제시될 때 관습의 전환은 빠르게 일어날 수 있다.

최근 혼다코리아의 행보는 이런 관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SUV=디젤’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국내 자동차 소비자들에게 최적의 대안을 제시해주고 있다.
대표적인 차량이 중형 SUV ‘뉴 CR-V 하이브리드’다. 디젤 엔진을 쓰지 않으면서도 디젤 SUV가 갖고 있던 장점을 상당폭 구현하고 있다.
그 동안 가솔린 하이브리드 엔진의 SUV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렉서스의 SUV 라인업은 대부분 하이브리드다. 그런데 프리미엄 브랜드인 렉서스는 브랜드 성격에 맞게 고배기량의 가솔린 엔진을 쓴다. 가격대가 높고 유지비용도 디젤의 그것과 비교할 바는 못 된다. ‘SUV=디젤’이라는 등식의 배경에는 경제성 비중도 상당하다.

혼다의 ‘뉴 CR-V 하이브리드’는 스펙상으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대안이다. 지난 1월 말 국내 시장에 출시된 이 차는 고효율의 직렬 4기통 2.0L DOHC i-VTEC 앳킨슨 사이클(Atkinson-cycle) 가솔린 엔진을 내연기관의 심장으로 쓴다. 배기량이 중형 세단급이다 보니 경제성이 좋다. 세금도 싸고, 연비도 높다. 다만 출력의 아쉬움이 있다. 6,200rpm에서 최고 145마력을 낸다.
최고 출력의 아쉬움은 전기 모터가 채워준다. 2개의 전기 모터가 뿜어내는 출력은 184마력(5,000~6,000rpm)이다.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모두 가동해 얻어낼 수 있는 출력, 즉 시스템 최고출력은 215마력이나 된다. 최대 토크는 전기 모터가 32.1kg·m(0~2,000rpm), 가솔린 엔진이 17.8kg·m(3,500 rpm)이다.
더 놀라운 건 연비다. 도심에서 15.3 km/ℓ, 고속도로에서 13.6 km/ℓ다. 둘을 모두 반영한 복합연비는 14.5km/ℓ다. 이륜도 아니고 사륜구동인데도 그렇다. 공인연비가 이럴 뿐, 실도로 주행에서는 18 km/ℓ 이상의 연비를 뽑아내는 것도 어렵지 않다. 디젤 엔진의 중형 SUV도 이 정도 연비는 못낸다.
고속 주행에서는 답답한 면이 있다. 시속 150km 이상의 주행에서는 내연기관 위주로 출력을 뽑아내는데 2,000cc 엔진이 억지로 용을 쓰는 인상이 남아 있다. 시원스럽게 속도가 올라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남들 내는 만큼의 속도는 충분히 끌어낸다.
연비와 출력을 모두 만족시키는 하이브리드는 쉽지 않다. 연비에 집중하면 출력이 아쉽고, 출력에 집중하면 연비를 맞추기 어렵다. 하지만 혼다의 하이브리드는 상충하는 두 가치를 이상적인 지점에서 구현하고 있었다.

혼다코리아는 이렇게 설명한다. “전기 모터가 내연기관을 보조하는 개념이 종전의 하이브리드라면 혼다의 하이브리드는 내연기관이 전기 모터를 모조하는 개념이다”라고 말이다.
혼다가 “하이브리드의 고정관념을 깼다”고 주창할 수 있는 논리적 배경이다. 184마력 모터를 활용한 역동적인 드라이빙이 가능하므로 ‘The Powerful Hybrid’라고 부르겠다는 용기가 이 이론에서 만들어진다. 저배기량 엔진으로 연비와 출력을 모두 잡은, ‘뉴 CR-V 하이브리드’의 탄생 배경이다.
‘뉴 CR-V 하이브리드’는 2모터 시스템을 강조한다.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뉴 어코드 하이브리드’도 마찬가지다. 2모터 시스템은 각각의 모터에 임무를 따로 주는 방식이다. 하나는 출력에 관여하고 나머지 하나는 회생제동에 집중한다. 파워풀 하이브리드(The Powerful Hybrid)는 2모터 시스템에서 출발한다. 혼다는 184마력의 퍼포먼스를 내는 전기모터를 ‘혼다 SPORT HYBRID i-MMD(Intelligent Multi-Mode Drive) 시스템’이라 불렀다.

국내에 출시된 ‘뉴 CR-V 하이브리드’는 4WD EX-L과 4WD 투어링 2개 트림으로 운용되는데 모두 사균구동 시스템을 갖췄다는 것도 든든하다. ‘전자제어식 Real Time AWD’로 불리는 이 시스템은 일반 주행 때는 전륜구동으로만 작동하다가 필요시에 후륜에 구동력을 배분한다. 각종 센서가 주행 상황을 감지하면 전자 제어시스템의 명령에 따라 즉각적으로 구동력을 배분한다. 계기반에는 전후륜 구동력 배분 방식을 시각적으로 표시해 주는 화살표가 있다. 운전자가 인식하는 도로상황과 계기반의 화살표 그래프가 한몸처럼 움직이는 모습이 한 편의 군무를 보는 듯하다.
외관 디자인에서는 군데군데 박힌 하이브리드 엠블럼과 배지, 하이브리드 전용 인라인 타입의 LED 안개등, 하이브리드 전용 리어 범퍼 가니시 같은 몇몇을 빼면 CR-V 가솔린 모델과 큰 차이는 없다. 그런데 눈길을 사로잡는 대목이 하나 더 있다. 19인치 알로이휠이다. 하이브리드 모델이 연비를 감안해 작인 사이즈의 휠을 쓰는 게 보통인데 ‘뉴 CR-V 하이브리드’는 대형 휠 사이즈가 주는 당당함을 포기하지 않았다.

전장 4630mm, 현대차 투싼과 같은 사이즈의 ‘뉴 CR-V 하이브리드’는 2열 시트를 앞으로 접으면 평평한 공간이 만들어진다. 차박을 염두에 둔 이들이 반기는 조건이다. 나들이용 돗자리 한 장만 깔면 최대 1,945ℓ의 평상이 뒷자리에 펼쳐진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이 차가 배터리가 실려 있는 하이브리드라는 걸 감안하면 놀랄 일이다. 혼다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적재공간 하단에 배치해 2열 시트를 가솔린 모델과 동일하게 풀플랫이 가능하게 했다.

스티어링휠 뒤쪽에 붙은 패들시프트는 기본적으로 회생 제동 브레이크 기능을 한다. 발전기로 가는 부하를 조절해 속도를 늦추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스포츠모드에서는 또 다른 재주를 부린다. 일반 변속기의 다운시프트 기능을 해 추가적인 토크를 얻어내는 용도로도 쓸 수 있다.

변속기로는 버튼식 e-CVT가 탑재됐으며, 주행모드는 ECON/SPORT/EV모드를 고를 수 있게 돼 있다. 배터리에 에너지가 충분하면 EV모드를 강제 가동해 전기차처럼 쓸 수 있다.
두 가지 트림 모두 사륜구동인 것처럼 혼다의 반자율주행 기능인 혼다 센싱(Honda Sensing®)도 기본 사양으로 장착됐다.

뉴 CR-V 하이브리드에서도 혼다 센싱은 착실히 진화하고 있었다. 전면 그릴 하단의 혼다 센싱 박스에 장착된 레이더(millimeter-wave radar)와 전면 유리 윗부분에 장착된 카메라(monocular camera)가 외부 상황을 받아들이는 구실을 하고, 여기에서 접수된 정보에 따라 운전자를 보조하는 여러 기능을 수행하도록 명령이 내려진다.
자동 감응식 정속 주행 장치 & 저속 추종 시스템 ACC&LSF(Adaptive Cruise Control & Low Speed Follow), 차선 유지 보조 시스템(LKAS), 추돌 경감 제동 시스템(CMBS), 차선 이탈 경감시스템(RDM)이 운전자를 대신해 안전운전을 보조한다. 오토 하이빔(Auto High beam)은 외부 조도를 인식해 주변이 어두우면 상향등을 켜고, 앞서가는 차량이나 마주 오는 차량을 감지하면 하향등으로 자동 전환한다.
다른 브랜드에서 흔히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로 부르는 ‘자동 감응식 정속 주행 장치와 저속 추종 장치’는 약 30km/h 이상에서 사실상의 자율주행을 수행한다. 시속 30km까지 가능하다는 건 상당한 진척이다. 물론 신호정지한 다른 차를 인식해 알아서 정차했다가 알아서 출발하는 차들에 비하면 아직은 과제가 남아 있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적용시 부담해야 할 추가 비용의 문제다.
카메라가 차선을 추출해 인지하며, 차량이 양차선 사이 중앙을 달릴 수 있도록 돕는 LKAS도 더 똑똑해졌다. 약 72km/h부터 180km/h 사이에서 작동해 범위가 넓어졌다.
스마트폰 무선 충전 시스템, 전 좌석 열선 시트, 열선 스티어링 휠, 애플 카플레이 및 안드로이드 오토 기능도 갖췄다.
뉴 CR-V 하이브리드의 가격은 부가세 포함 4WD EX-L 4,510만원, 4WD 투어링 4,770만원이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