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봐왔던 한일전이 아니었다. 전 종목을 통틀어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량차가 났다면 최소한 잘했다는 박수갈채라도 받았지만 이번에 달랐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5일 오후 일본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 친선전에서 전반전 2골, 후반전 1골을 내주며 0-3으로 패배했다. 한일전에서 한국이 3골차로 패한 것은 이번이 3번째지만 이번처럼 실망감이 컸던 적은 없었다.
애초 대한축구협회가 이번 한일전을 승락했을 때부터 예견됐던 참사였다. 일본의 경우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하는 추세였다. 지난해 오스트리아와 친선전 때 이미 단체 감염 사례를 겪었던 대표팀이었다. 또 도쿄올림픽을 개최를 앞두고 관중을 동원이 가능하다는 점을 선전하려는 일본의 의도가 뻔했다. 마침 월드컵 예선을 앞둔 일본은 최정예로 멤버를 갖출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https://file.osen.co.kr/article/2021/03/26/202103260256778437_605ccf7a10259.jpg)
여기에 벤투 감독의 오판과 불통이 겹쳤다. 손흥민(토트넘), 황희찬(라이프치히), 황희조(보르도) 등 공격 주축들이 부상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소집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도 이들의 명단을 올려 굳이 희망을 갖게 했다. 또 K리그 각 구단들과 소통 없이 독단적으로 명단을 뽑아 비난 여론을 높였다. 기량적인 면에서 기대감은 최저치였기에 0-3 패배는 어쩌면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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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경기 내용이었다. 이강인을 최전방에 배치하는 제로톱 전술로 나왔다. 남태희, 나상호, 이동준을 2선에 꾸려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다. 굳이 이정협이라는 원톱 자원을 벤치에 앉혀 뒀고 익숙치 않은 포지션에 이강인으로 뒀다. 결국 요시마 마야와 도미야스 다케히로가 중앙 수비수로 나선 일본 수비진에 꽁꽁 묶였다.
한편으로는 참신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손흥민 등 유럽파가 있었다면 이런 고민조차 하지 않았을 선수 배치였기 때문이다. 상대가 누구든 거의 굳어진 포메이션을 보여줬던 벤투호였기에 파격적이었다. 앞서 충분히 그런 실험을 할 수 있었던 경기가 많았지만 외면하다가 하필 한일전에서 변칙을 썼다는 것이 씁쓸함을 남겼다.
평소 강조했던 빌드업도 되지 않았다. 원래도 잘되지 않았지만 이날은 아예 우리 수비 진영에서 상대에게 공을 넘기는 사례가 속출했다. 상대 전방 압박에 속절 없이 공을 내주는 모습은 짠하기까지 했다. 짧은 훈련기간도 문제였을 수 있다. 그럼에도 벤투 감독으로부터 새로운 지시나 변화는 나오지 않았다.
선수들의 투지도 모자랐다. 90분 동안 치열했던 그동안의 한일전과 달리 경고 하나 나오지 않았다. 전방 압박도 느슨했고 수비진은 자주 위험을 초래했다. 한일전에서 보여줬던 선배들의 악착같은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비록 무득점에 그쳤지만 미나미노 다쿠미가 박스 안에서 한국 수비진들을 여유있게 속이는 모습은 처참하기까지 했다.
한일전을 보기 위해 10년을 기다려 경기장을 찾은 한국 응원 팬들에게는 실망감을 안기기에 충분했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 한일전이 이랬던가 지켜보는 이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느린 공수 전환, 계속되는 실수,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전술, 겹치는 포지션 등 모든 단점이 총체적으로 드러났다. 후반 투입됐던 김승규가 아니었다면 6점차도 가능했던 경기였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https://file.osen.co.kr/article/2021/03/26/202103260256778437_605ccf7bae58b.jpg)
벤투 감독은 경기 후 평소와 달리 "우리가 원하는 경기를 전혀 하지 못했다", "이강인 제로톱 전술은 내가 선택했다. 잘 되지 않았다"고 순순히 전술 문제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모든 패배의 책임은 내게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과연 벤투 감독이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지 궁금하다.
건진 것 하나 없이 귀국하는 대표팀은 파주에서 자가격리에 돌입한다. '요코하마 참패'라는 치욕은 이제 K리그로 이어질 전망이다. 4월 2일부터 리그가 재개되지만 각 구단들은 대표팀에서 뛰었던 자원들을 당장 활용할 수 없다. /letmeou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