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만프로야구에서 평균자책점 4.00을 기록했던 좌완 투수 라이언 카펜터(31·한화)가 KBO리그 시범경기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카펜터는 시범경기에 두 차례 등판해 8⅔이닝 3피안타 2볼넷 16탈삼진 무실점 위력투를 펼쳤다. 시범경기 평균자책점과 탈삼진 1위 예약. 총액 50만 달러로 앤더슨 프랑코(롯데)와 함께 올해 KBO리그 외국인 선수 중 최저 몸값이지만 가장 인상적인 시범경기를 보내고 있다.
카펜터는 지난해 대만프로야구(CPBL) 라쿠텐 몽키스에서 활약했다. 26경기에서 157⅓이닝을 던지며 10승7패를 올렸지만 평균자책점 4.00으로 평범한 성적을 냈다. 규정이닝 투수가 6명밖에 없었지만 그 중 4위였다. 우리나라보다 한 수 아래로 여겨지는 대만에서 평범한 성적을 기록했기에 카펜터를 향한 팬들의 기대치는 높지 않았다.

하지만 시범경기에서 깜짝 반전을 일으키고 있다. 196cm 큰 키에서 타점 높은 투구를 하는 카펜터는 1루 쪽 투구판을 밟고 축발과 디딤발이 엇갈리는 크로스 스탠스로 던진다. 공을 최대한 숨기면서 대각으로 던져 타자들이 까다로워한다. 대개 이런 폼은 제구가 오락가락하기 마련인데 카펜터는 일정하다. 좌타자 상대 바깥쪽 슬라이더, 우타자 상대 체인지업과 커브를 원하는 곳으로 커맨드한다. 약점으로 지적된 직구 구속도 140km대 중반으로 준수하다. 슬라이드 스텝까지 빨라 1루 주자 견제 능력도 뛰어나다.
지금까지 모습만 보면 대만에서 왜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는지 의아하다. 지난 2019년 8월 팔 수술을 받은 뒤 대만에서 복귀 첫 시즌을 보냈던 카펜터는 몸 상태가 올해 더 좋아졌다. 구속이 올라오면서 변화구의 위력이 배가 된 점이 크지만,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게 대만리그의 특성이다.

대만프로야구는 올해 5구단 체제가 됐지만 지난해까지 단 4개팀으로 운영됐다. 카펜터는 시즌 내내 3개팀만 상대하며 같은 타자들을 계속해서 만났다. 자주 만날수록 공이 눈에 익는 타자보다 투수가 불리하다. 구위형 투수라면 힘으로 이겨낼 수 있지만 기교파 투수에겐 불리한 환경이다.
카펜터는 “아직 KBO리그 팀들을 다 만나보지 않았지만 한국과 대만의 가장 큰 차이는 팀 숫자다. 대만은 4개팀밖에 없고, 1년간 3개팀만 상대했다. 한국은 10개팀이고, 9개팀을 상대할 수 있다. 투수 입장에서 같은 타자를 자주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이 더 유리하다”고 이야기했다.
손끝 감각이 예민한 투수에겐 공인구 차이도 크게 다가온다. 카펜터는 “대만보다 한국 공인구가 손에 훨씬 잘 맞고 좋다. 대만에서 가장 힘들었던 게 공인구였다. 시즌 중에도 두 번이나 공인구를 바꿨다. 경기 중 심판이 건네주는 공도 일정하지 않았다. 다른 공과 섞인 게 많았다. 한국은 공인구가 일정해 마음에 든다”고 설명했다. 대만은 지난해 시즌 도중 공인구를 교체해 반발계수를 낮추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리그 수준을 떠나 환경 차이를 감안할 때 카펜터가 대만보다 한국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낼 가능성이 충분하다. 개막전 선발등판이 유력한 카펜터는 “투수라면 늘 개막전 선발이 욕심난다”며 “우리 팀 분위기가 정말 좋다. 예상보다 훨씬 좋은 성적으로 팬 여러분과 관계자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고 자신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