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여제’ 김연경(33·흥국생명)의 챔피언결정전이 3경기 만에 허무하게 끝났다. 연봉까지 삭감하면서 국내 복귀를 결심했지만, 각종 악재 속 우승의 꿈이 무산됐다.
김연경은 지난 18일 V리그 여자부 포스트시즌 미디어데이에 참석해 “한국에서 계속 배구를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 기회를 잡아서 우승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봄배구에 임하는 남다른 감회를 밝혔다.
2008-2009시즌을 끝으로 V리그를 떠났던 김연경은 지난해 6월 6일 오랜 해외생활을 마무리하고 국내 복귀를 전격 결심했다. 코로나19로 해외리그 진출이 불확실한 가운데 도쿄올림픽 출전과 12년만의 우승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분홍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큰 관심을 모았던 부분은 연봉. V리그 여자부는 팀당 최대 23억원을 쓸 수 있는 샐러리캡이 존재한다. 이미 이재영, 이다영 쌍둥이자매에게 10억원을 소진한 흥국생명은 김연경에게 옵션 포함 최대 6억5000만원을 지급할 수 있었다. 터키에서 최소 16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았던 김연경이 이를 받아들일지 관심이 쏠렸다.
김연경에겐 연봉보다 V리그 복귀가 우선이었다. 김연경은 “그동안 열심히 뛰어준 후배들을 위해 연봉을 양보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며 연봉 3억5천만원의 조건으로 1년 계약을 맺었다.
시작부터 많은 관심과 뜨거운 열기 속 배구여제의 화려한 귀환을 알렸다. KOVO컵에서 비록 GS칼텍스에게 우승을 내줬지만, 준결승까지 4경기 연속 무실세트 승리를 이끌었고, 정규리그에서도 토종 득점 1위(648점), 공격성공률 전체 1위(45.92%)에 오르며 팀의 4라운드 17승 3패 압도적 승률을 견인했다.

잘 나가던 김연경과 흥국생명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지난 2월. 이재영-이다영 쌍둥이자매가 학폭 미투사태로 이탈한 5라운드부터 브레이크 없는 추락을 겪으며 5, 6라운드 2승 8패의 극심한 부진 속 정규시즌 왕좌 자리를 GS칼텍스에게 내줬다.
가장 힘든 선수는 주장 김연경이었다. 의지했던 맏언니 김세영까지 부상 이탈하며 혼자서 외국인선수 브루나 모라이스를 비롯해 후배들을 다독이고 또 다독여야했다. 컵대회 때만 해도 그 누구보다 인터뷰에 씩씩하게 임했던 에이스의 표정은 갈수록 굳어갔다. 여기에 IBK기업은행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엄지손가락을 다치는 악재까지 발생했지만, 붕대에 ‘끝까지간다’는 문구를 새기고 코트를 밟는 부상투혼을 펼쳤다.
그러나 김연경도 사람이었다. 배구여제도 체력 저하를 피해갈 수 없었다. 플레이오프 1차전부터 4경기 연속 줄곧 45% 이상의 공격성공률을 기록했던 그는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28.57%의 극심한 부진 속 상대의 2연승을 멍하니 지켜봐야했다. 이날 3차전에서는 이전보다 나아진 모습으로 풀세트 펼쳤지만, 끝내 GS칼텍스의 벽을 또 넘지 못하며 우승 도전이 좌절됐다.
연봉 대폭 삭감까지 감수하면서 택한 V리그 무대. 올해가 국내에서 치르는 마지막 시즌이 될 수도 있기에 그 어느 때보다 투혼을 발휘했지만, ‘라스트댄스’는 없었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