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에 뼈를 묻고 싶었는데...".
지난 30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KT위즈와 KIA타이거즈의 마지막 시범경기가 끝나자 더그아웃 쪽에서 송별식이 열렸다. 이동건(28) 불펜 포수가 이날을 끝으로 팀을 떠났다. 지난 5년 동안 불펜에서 투수들의 피칭을 받았던 숨은 일꾼이었다. 맷 윌리엄스 감독을 비롯해 코치진과 선수들이 모두 모여 사진과 감사패를 전달했다.
새 출발의 성공을 기원하는 자리였다. 31일 연락이 닿은 이동건은 고향인 광주를 떠나는 길이었다. "지금 평택으로 올라가고 있다. 그쪽에서 외삼촌이 폐기물 사업을 확장하시는데 가족으로서 도움을 드리러 가는 길이다. 고민을 많이 해서 결정했다. KIA에서 잘해주셔서 뼈를 묻고 싶었지만..."이라며 웃었다.

사랑하는 KIA를 떠난 이유는 불안한 미래였다. 불펜포수는 오래 못한다. 게다가 선수들과 신분이 같아 비시즌 12월과 1월에는 수입이 없다. 겨울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동건은 "항상 겨울이 힘들었다. 배달 등 여러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번 겨울은 코로나 때문에 더 힘들었다. 내년이면 서른이다. 새로운 결정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프로야구 불펜 포수의 수입은 크지 않다. 기본적으로 받는 연봉이 있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가끔 투수들과 감독들이 따로 고마움을 전하기도 한다. 이동건은 "KIA는 다른 곳보다 정말 잘 해주었다. 매년 월급을 올려 주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구단은 올해부터 육성 선수로 신분을 바꾸어주었다.

이동건은 성실하고 항상 웃는 얼굴로 평판이 좋았다.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 하루를 열심히 사는 청년이기도 했다. 미래를 위한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영어도 배우고 컴퓨터 자격증도 땄다. 그는 "미래가 불안한 직업이고, 현실적으로 언제까지 불펜포수를 할 수는 없었다. 나중을 준비하고 싶었다"고 이유를 말했다.
불펜포수로 능력이 있었다. 볼도 잘 받아주고 추임새가 좋아 양현종이 가장 아꼈다. 양현종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볼을 받아준 이도 이동건이었다. 헥터 노에시는 볼을 봐달라고 따로 요청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라운드의 선수들을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솜씨도 남달랐다. 중요한 경기에서는 불펜이 아닌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을 응원하라는 요청까지 받았다. 그만큼 선수들의 신뢰가 두터웠다.
주변의 어려움을 나눌 줄 아는 마음씨도 곱다. 작년 맷 윌리엄스 감독이 부임하고 가진 2월 플로리다 스프링캠프에서 MIP상을 수상했다. 감독이 직접 가장 중요한 몫을 해주었다며 4명의 불펜 포수들을 선정했다. 1000달러를 나누어 각각 250달러를 받았다. 이동건은 이 돈을 허투로 쓰지 않았다.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당한 대구·경북 지역을 위해 기부했다. 작년 10월 이달의 감독상으로 불펜포수 4명을 선정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받은 상금을 모두 광주전남 적십자사에 기부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항상 주변을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양현종 선배가 주변을 돕는 것을 보고 나도 배우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동건은 광주일고와 인하대를 나왔으나 프로의 낙점을 받지 못했다. 2016년 넥센 육성선수를 거쳐 2017년 고향 팀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다. 입단하자마자 우승했다. 1군 선수는 아니었지만 가장 기쁜 순간이었다. 자신이 볼을 받아주었던 양현종과 헥터 노에시가 20승을 따냈다. 마치 자신이 20승을 한 것 같아 좋았다.
이동건은 "우승할 때 기억이 가장 남는다. 오자마자 특별한 경험을 했다. 그때 김기태 감독님이 우리들을 너무 잘 챙겨주셨다. 윌리엄스 감독님도 아껴주셔서 감사하다. 5년 동안 어떻게 하면 잘할 것인지를 배웠다. 선수들과 동행해서 기뻤다. 동료 불펜포수들도 관심 갖고 응원해주셨으며 좋겠다. 항상 KIA를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떠나면서도 KIA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겨진 작별인사였다. /sunn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