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예요.”
농구만화 슬램덩크의 명대사다. 북산의 안 선생님이 루즈볼을 쫓는 중학생 정대만에게 던진 대사였다. 결국 승부를 포기하지 않은 ‘불꽃남자’ 정대만은 마지막에 위닝샷을 터트린다.
승부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뛰어야 짜릿한 역전슛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플레이오프 1차전 승부처에서 에이스를 뺀 팀이 있다. 부산 KT다.

부산 KT는 11일 안양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안양 KGC인삼공사에게 80-90으로 패하며 첫 판을 내줬다.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 역사에서 1차전을 승리한 팀이 올라갔던 확률이 93.5%에 달한다.
KT는 전반전 제러드 설린저와 오세근 봉쇄에 성공하며 45-41로 앞섰다. 후반전도 시소게임 양상이었다. 그런데 전성현의 슛이 폭발해 종료 6분 56초를 남기고 KGC가 72-63으로 역전하자 서동철 KT 감독이 마지막 작전시간을 요청했다.
서 감독은 역전에 당황한 선수들에게 “다음에 이기면 되지. 우리는 타임이 없어”라고 외쳤다. 지친 허훈이 실책을 연발하자 종료 6분 12초를 남기고 대신 최진광이 투입됐다. 최진광은 끈질긴 수비로 이재도를 괴롭혔다.
문제는 종료 3분을 남기고 10점차인 상황에서도 허훈은 투입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국 허훈은 끝까지 벤치를 지키면서 경기를 마감했다. 허훈은 3분여를 쉬면서 체력을 회복했고, 개인파울은 단 2개였다. 서 감독이 해볼만한 승부처 상황에서 팀내 최다 18점을 올리고 있던 허훈을 다시 넣지 않은 것에 대해 ‘일찍 승부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경기 후 서동철 감독은 승부처 허훈 제외에 대해 “힘들어 해서 잠시 쉬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오늘 마지막에 지쳤던 모습이 있었다. 최진광이 잘해줬다. 흐름상 오늘 조금 어려운 상황이 아닌가 판단이 들었다. 기동성 있는 수비를 하는게 (허훈의) 공격보다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이른 마지막 작전시간 요청에 대해 서 감독은 "그때 선수들이 표정부터 많이 흔들렸다. 타임아웃도 빨리 써버렸다. 지고 이기고를 떠나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선수들 마음가짐을 다잡기 위해서 그랬다. 역전이 되고 선수들 표정이 어두웠다. 활기차게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나쁘게 표현하면 투지가 부족했다. 상대적으로 문성곤은 팀에 공헌도가 많이 컸다. 그런 모습이 우리 팀 선수들에게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팬들의 입장에서 보면 KT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승부를 미리 포기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심지어 상대팀 선수들도 허훈이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의아해했다.
3점슛 5개 포함, 21점을 몰아친 전성현은 “KT 벤치를 보는데 (허)훈이가 안 뛰는 것처럼 앉아 있더라. 부상이 있나 싶었다. 오늘 경기는 상대가 포기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0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KT는 질 때 지더라도 끝까지 싸우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 KT가 1차전 승부처에서 허훈을 뺌으로써 오히려 KGC 선수들 사기가 더욱 올라갔다. 허훈의 체력이 문제였고, 가드진에 압박수비가 필요했다면 최진광을 일찌감치 기용해 허훈의 부담을 덜어줬어야 했다.
과연 6위 KT가 승부처에서 허훈을 빼면서 다음 경기를 기약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일까. 2차전은 13일 안양에서 이어진다.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