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고 나서 추억이 될 수 있으니 챙겼죠."
한화 외야수 정진호(33)는 올 시즌 벌써 두 차례나 투수로 깜짝 등판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 10일 대전 두산전, 17일 창원 NC전에서 나란히 아웃카운트 1개씩 잡으며 1볼넷 무안타 무실점 호투(?}를 선보였다. 야수의 투수 등판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인데 한 시즌 벌써 두 번 마운드에 오르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첫 등판을 마친 뒤에는 아웃카운트 잡은 공을 기념으로 직접 챙겼다. 정진호는 "은퇴하고 나서 추억이 될 수도 있으니 공을 챙겼다"며 웃은 뒤 "첫 안타, 홈런, 사이클링히트 기념구를 갖고 있다"고 했다. 정진호는 두산 시절인 지난 2017년 6월7일 잠실 삼성전에서 역대 23번째 사이클링히트 기록을 세운 바 있다. 1회 2루타, 3회 3루타, 4회 단타, 5회 홈런으로 역대 최소 4⅔이닝, 4타석 만에 만든 사이클링히트로 화제를 모았다.

대부분 타자들은 1군 데뷔 첫 안타와 홈런 공을 챙긴다. 그 이후 의미 있는 기록을 세운 공을 기념으로 챙기곤 하는데 정진호는 남들에게 거의 없는 사이클링히트에 투수 등판 기념구까지 손에 넣었으니 특별함이 크다.
![[사진] 정진호가 사이클링히트 기록을 세운 뒤 기뻐하고 있다. /OSEN DB](https://file.osen.co.kr/article/2021/04/20/202104202201771832_607ef3e0d1bce.jpg)
'투수' 정진호는 전력 투구를 하지 않았다. 110km 안팎의 아리랑볼로 가볍게 살살 뿌렸다. 정진호는 "일부러 세게 안 던졌다. 경학이를 보면서 '왜 저렇게 죽을 힘으로 던질까' 싶었다. 나중에는 팔이 안 넘어가고, 공이 안 가 제구도 안 되더라"며 "세게 던지면 구속이 얼마나 나올지 모르겠다"면서 웃어보였다.
앞으로도 팀을 위해 마운드에 오를 각오가 되어있다. 다만 투수의 야수 등판 자체가 팀이 크게 뒤진 상황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마냥 즐겁게 받아들일 순 없다. 정진호는 "팀이 안 좋을 때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더는 그런 일 없길 바라야 한다"며 "팀에 도움이 된다면 투수든 포수든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수로 주목받고 있는 정진호이지만 본업인 타자로는 주목받을 만한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한화 리빌딩 기조에 따라 팀의 14경기 중 7경기만 뛰며 출장 비율이 줄었다. 7경기 중 5경기를 선발로 나왔지만 별다른 활약이 없었다. 시즌 성적은 20타수 4안타 타율 2할 3타점.

정진호는 "방망이를 잘 쳐서 인터뷰를 해야 한다"며 "시즌 전 생각한 그림은 화려하게 그렸는데 그렇게 못하고 있다"고 자책했다. 지난해보다 출장 비율과 팀 내 입지가 줄었지만 이를 핑계삼을 생각은 없다. 그는 "경기에 나갈 기회를 주신다. 그때 좋은 모습을 보여줘 한 경기라도 더 나갈 수 있게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