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전하고 점잖은 한화는 없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 체제에서 확 바뀐 한화의 단면은 거침없는 승부욕 표출로 잘 나타난다.
한화 4년차 내야수 정은원은 25일 대전 LG전에서 6회말 병살타를 쳤다. 0-4로 뒤진 1사 1루에서 2루 땅볼을 치며 4-6-3 병살타로 이닝이 끝나자 1루로 뛰던 정은원은 헬멧을 벗어 땅에 집어던졌다. 기회를 이어나가지 못해 아쉽고 분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앳된 얼굴과 순한 이미지로 '대전 아이돌' 수식어가 따라붙는 정은원에게 쉽게 볼 수 없는 거친 면모. 정은원뿐만 아니라 올 시즌 한화 선수들의 감정 표현이 어느 때보다 풍부해졌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만 삭혀 '승부욕이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던 지난날의 한화가 아니다.

투수 강재민은 지난 18일 창원 NC전에서 6회 이닝을 마친 뒤 글러브로 입을 가린 채 소리를 질렀다. 몸에 맞는 볼과 연속 볼넷으로 밀어내기 실점을 내준 스스로에게 화를 낸 것이다. 또 다른 투수 김범수도 지난 21일 대전 키움전에서 안타와 볼넷으로 자초한 만루 위기를 극복한 뒤 글러브로 얼굴을 가리고 포효했다.

팀의 리더로 떠오른 내야수 하주석도 지난 14일 대구 삼성전에서 1회 첫 타석 삼진을 당한 뒤 덕아웃 뒤에서 방망이를 부러뜨렸다. 두 동강 난 배트가 구단 TV 카메라에 잡혔다. 이후 하주석은 2루타 포함 3안타를 몰아쳐 팀 승리를 이끌었다.
프로 선수라면 누구나 승부욕이 있기 마련이다. 승부욕 없이 프로의 자리까지 오를 수 없다. 다만 우리나라 정서는 감정을 절제하는 걸 미덕으로 여겼다. 예의와 매너를 중시하는 종목 특성상 감정을 억지로 참아왔다. 지난해까지 경험 많은 베테랑 선수들이 주를 이룬 한화 덕아웃은 어느 팀보다 묵직하고, 감정 표현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젊은 선수들로 재편되고, 수베로 감독을 비롯해 외국인 코칭스태프가 오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상대를 도발하거나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감정 표현을 활발하게 한다. 스스로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동료들의 좋은 플레이에 다같이 환호하며 기뻐한다. 건전한 승부욕 표출로 팀 분위기를 일깨운다.

수베로 감독은 "감정 표현을 아주 좋게 본다. 야구는 어려운 스포츠이고, 그런 열정이 필요하다. 중요한 아웃을 잡거나 적시타를 칠 때 나오는 아드레날린은 밖으로 분출하는 게 좋다. 선수의 열정과 감정이 적절하게 표출되는 건 팀으로 볼 때도 좋은 방향"이라며 "특히 하주석이 덕아웃에서 목소리를 크게 높이고, 적극적으로 힘을 불어넣는 것이 팀 케미스트리에 큰 도움이 된다"고 반겼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