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우리 둘이 같이 하면 잘 될 것 같아.”
결국은 끝까지 버티는 자에게 기회가 오는 것 같다. 2014년 KT 위즈의 창단 멤버로 프로에 입성해 줄곧 빛을 보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 결과 1군에서 끝내기승리를 합작하는 감격의 순간을 맞이했다. KT 외야수 송민섭(30)과 내야수 김병희(31)가 쓴 기적의 스토리다.
지난 25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와 롯데의 시즌 3번째 맞대결. 선발에서 제외됐던 송민섭은 4-5로 뒤진 8회 볼넷으로 출루한 유한준의 대주자로, 김병희는 곧바로 안타를 친 조용호의 대주자로 나란히 그라운드를 밟았다. 이후 송민섭은 강백호의 희생플라이 때 귀중한 동점 득점을 올렸다. 성공한 대주자 기용이었다.

이들의 진가는 타석에서도 발휘됐다. 5-5로 맞선 9회말 2사 1, 2루 찬스. 송민섭은 롯데 마무리 김원중을 만나 3B-1S의 유리한 카운트를 선점한 뒤 침착하게 볼넷을 골라내며 만루를 만들었다. 이후 1군 통산 33경기가 전부였던 김병희가 2B-2S에서 5구째 직구(145km)를 받아쳐 1루수 키를 살짝 넘기는 안타로 연결했다. 1군 등록날 첫 타석에서 만들어낸 극적인 끝내기안타였다. 창단멤버로 KT에 합류한 이후 우여곡절이 많았던 두 선수가 합작한 승리라 더욱 의미가 깊었다.

송민섭은 선린인터넷고-단국대를 나와 2014년 육성선수로 마법사 유니폼을 입었다. 실력이 뛰어나진 않았지만, 특유의 근성과 악바리 기질을 앞세워 1년 만에 정식선수로 등록이 됐고, 매 순간을 성실하게 임하며 7년이 지난 지금도 외야 백업 1순위로 1군에 이름을 올리는 선수가 됐다. 2013년 트라이아웃을 통해 입단한 22명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선수가 바로 송민섭이다.
송민섭의 1군 통산 기록은 308경기 타율 .229(170타수 39안타) 1홈런 10타점. 경기수보다 적은 타수에서 대수비, 대주자가 그의 역할임을 알 수 있다.쉽게 말해 주전이 아닌 백업이다.
그러나 선수단은 송민섭을 대체 불가라 말한다. 감독은 특유의 성실한 태도와 궂은일을 마다 않는 적극성을 높이 평가한다. 또한 동료들은 더그아웃에서 그 누구보다 파이팅을 외치는 그를 통해 힘을 얻는다. 경기장에서 직접 보여주는 허슬플레이는 기본이다. 그리고 전날 역시 동점 득점과 끝내기의 발판을 놓는 볼넷이라는 작지만 의미 있는 기록을 통해 승리에 보탬이 됐다.

KT 팬들에게 어느 정도 익숙한 송민섭과 달리 김병희는 사실상 인지도가 거의 없는 무명이다. 동산고-동국대를 나와 2차 특별지명 13순위로 뽑힌 뒤 KT의 창단 유니폼 모델로 발탁될 정도로 기대가 컸지만, 데뷔 초 부상 불운이 찾아왔다.
불운도 이런 불운이 없었다. 첫 스프링캠프서 수비 도중 우측 검지가 부러졌는데 이듬해 복귀해 수비를 하다가 같은 부위가 다시 골절되며 수술을 받았고, 재기를 노린 2015년 캠프에서 이번에는 투수 공에 맞아 다시 동일 부위를 다쳤다. 재활에 지친 그는 결국 2015년 10월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해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이후 2019년 9월 20일 롯데전에서 교체로 감격의 1군 데뷔전을 치렀지만, 1군보다는 2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했다.
올해도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돼 줄곧 익산에 머물러 있던 상황이었다. 1군 통산 기록 33경기 타율 .143에 올해 퓨처스리그에서도 13경기 타율 .214 1홈런 5타점으로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나 황재균의 부상 이탈로 1군 콜업의 기회를 잡았고, 등록 첫날 끝내기안타로 그간의 마음고생을 어느 정도 날려버렸다.
KT 관계자에 따르면 김병희는 전날 첫 타석을 앞두고 송민섭을 향해 “우리 둘이서 같이 하면 뭔가 잘 될 것 같다”는 좋은 예감을 전달했다. 그리고 송민섭의 볼넷에 이어 김병희가 끝내기안타를 치는 기적이 만들어졌다.
강한 자가 버티는 게 아닌 버티는 자가 강하다는 말이 있다. 그 어려운 프로에 입단해서도 중간에 포기하는 선수가 대다수이지만, 이들은 버티고 버티며 마침내 영광의 하루를 만들어냈다. "이 맛에 야구를 한다"는 김병희의 인터뷰를 통해 그 기쁨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KT의 전날 승리가 평소보다 빛나 보였던 이유이기도 했다. /backlight@osen.co.kr
![[사진] KT 위즈 제공](https://file.osen.co.kr/article/2021/04/26/202104260819778265_6085fbb159b35.jpe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