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 투수들에게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안식년’의 징후가 엄습하는 것일까. 롯데 자이언츠의 필승조 역할을 맡아야 할 두 선수, 구승민과 박진형에 대한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필승조 구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시즌 플랜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오고 있다.
롯데는 현재 마무리 김원중을 필두로 회춘에 성공한 김대우, 2년차 시즌을 맞이하는 최준용이 사실상 필승조로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애시당초에 계획했고 ‘8회 셋업맨’ 1순위였던 구승민의 최근 부진이 심상치 않다. 여기에 필승조에 준하면서 추격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박진형까지 좀처럼 구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57경기 5승2패 20홀드 평균자책점 3.58(60⅓이닝 24자책점)로 믿음직했던 필승조 구승민은 올해 초반 전혀 다른 선수가 됐다. 8경기 1승1패 평균자책점 13.50(6이닝 9자책점)의 성적에 그치고 있다. 피홈런 2개에 4볼넷 1사구 등 세부 지표도 좋지 않다. 최근 3경기 연속 실점을 이어가고 있다.

2018년 14홀드로 필승조 커리어의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지만 이듬해인 2019년 부진했고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사실상 안식년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정상적으로 돌아와서 필승조로 시즌을 완주 했다. 등판 경기 수는 공동 17위, 구원 소화 이닝은 전체 7위 수준이었다. 많이 던진 편이었지만 지난해 롯데의 승수(71승)와 비교해보면 등판 경기 수와 이닝은 적정수치로 보였다. 하지만 2019년에 이어 다시 한 번 안식년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우려스러운 점.
구승민 스스로도 평상시 패스트볼 구속 편차가 큰 편이라고 말하지만 기본적으로 150km 가까이 찍는 패스트볼을 던졌다. 그러나 올해 때로는 140km가 되지 않는 구속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구위가 올라오지 않으면서 주무기 포크볼의 위력도 떨어졌다. 패스트볼-포크볼 투피치 유형의 투수로 변해가는 구승민인데 현재 상황이 긍정적이지는 않다.
구승민의 부진은 결국 김대우, 최준용, 김원중 등 다른 필승조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 지난 24~25일 KT와의 경기가 대표적. 24일 경기에서 롯데는 4-2로 승리를 거뒀는데 선발 박세웅(5이닝 2실점)에 이어 김대우가 6회를 책임졌다. 그리고 최준용이 7회와 8회, 2이닝을 책임졌다. 구승민은 나서지 않았고 마무리 김원중이 9회를 마무리 지었다.
25일 경기 역시 마찬가지. 4-3으로 앞선 6회 선발 이승헌에 이어 최준용이 올라왔다. 멀티이닝 소화 후 연투였다. 6회 볼넷 1개를 내준 뒤 마무리 지었고 7회까지도 막아야 했다. 결국 7회말 조일로 알몬테에게 추격의 빌미를 제공하는 솔로포를 허용했다. 8회 구승민이 올라왔지만 이닝을 매듭짓지 못했고 1사 1,3루에서 3연투의 김대우를 올려야 했다. 강백호에게 좌익수 희생플라이를 헌납했고 아웃카운트 1개만 책임지고 마무리 김원중에게 공을 넘겼다. 팀은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필승조 1명이 삐걱 거리면서 다른 필승조들과의 톱니바퀴까지 어긋나는 상황이 반복되면 과부하가 생길 수밖에 없다.
박진형 역시 올해 구위 저하가 역력하다. 8경기 2승1패 평균자책점 11.37(6⅓이닝 8자책점)의 성적. 최준용과 김대우의 급부상으로 박진형에게 필승조의 역할을 맡기지는 않았다. 다만, 필승조 경험을 바탕으로 추격조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17홀드를 기록했지만 후반기부터 이어져 온 부진(후반기 평균자책점 7.36)이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허문회 감독은 박진형의 1군 엔트리 제외 여부에 대해서 선을 그었지만 등판 상황은 박진형에 대한 신뢰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2017년 후반기 필승조로 팀의 가을야구에 힘을 보탰지만 이듬해는 어깨 통증으로 휴식을 취해야 했다. 팔꿈치 수술 전력도 있는만큼 박진형의 건강 문제는 떨칠 수 없는 불안 요소다.
문제는 이들을 대체할 만한 자원도 그리 마땅치 않다는 것. 오현택, 이인복, 서준원 등이 역할을 해줘야 하지만 아직까지 접전 상황에서 믿음을 심어주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퓨처스리그는 육성 체제 위주라 당장 1군급 불펜 자원이 충원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구승민과 박진형이 시간을 뒀을 때 살아난다면 롯데 입장에서는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그 시기가 좀 더 빨라져야만 과부하 위기와 안식년에 대한 우려를 지울 수 있다. /jhra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