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호의 장기 투자 종목 '임재백' [인터뷰 종합]
OSEN 장우영 기자
발행 2021.05.16 12: 49

나이 차이는 15살, 기수 차이는 14기. 이 정도 차이면 말 섞기도 어렵고,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대선배다. 기수 문화가 엄격한 개그맨 선후배로 만났다면 더 말할 것도 없을 터.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죽이 척척 맞는 티키타카로 맛깔나는 입담을 자랑하고 있다. 후배는 선배에게 “제가 영감을 드릴테니 경험을 주십시오”라고 말했고, 선배는 그런 후배를 눈여겨보며 ‘장투’(장기투자) 종목으로 삼았다. KBS 공채 13기 개그맨 박성호와 공채 27기 개그맨 임재백의 이야기다.
지난해 ‘개그콘서트’ 폐지 후 개그맨들이 설 공개 코미디 무대가 줄어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해 공연, 행사도 줄어들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됐다. 이런 개그맨들의 삶이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되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임재백 역시 ‘개그콘서트’ 종영과 함께 설 자리가 많지 않았다. 2012년 KBS 공채 27기 개그맨으로 데뷔한 임재백. 약 10년 동안 활동하며 ‘불상사’, ‘막말자’, ‘봉숭아학당’ 등의 코너에서 활약했지만 인지도가 높지 않은 건 사실이다. ‘불상사’에서 김구라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 노홍철 성대모사로 존재감을 보였지만 확실하게 자리를 잡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개그콘서트’가 없어진다는 건 온도와 기운으로 느낄 수 있었죠. 하지만 알면서도 제가 이 배를 떠날 수 없다는 게 슬펐고, ‘이번 주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종영하는 과정을 본다는 게 슬펐어요. 알면서도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죠. 지금은 그때보다 덤덤해지긴 했는데, 당시에는 그랬네요.” (임재백)
인지도가 있었더라면 다른 방송이나 행사로 활동을 이어가면 되고, 신인 급이라면 유튜브 등 새로운 플랫폼에서의 활동을 꿈꿔볼 수 있었겠지만 임재백의 위치는 그 사이 어딘가였다.
“‘개그콘서트’ 종영 후 한동안 그동안의 루틴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 천천히 생각하고자 했어요. 경제적으로 힘든 건 있었죠. 대리운전, 영업 등을 해봤는데, 당장 눈 앞에 뭔가를 쫓으려고 하니 잘 안되기도 했고, 박미선 선배님께서 ‘우리 같은 직업은 단 돈 몇 만원을 벌더라도 마이크 잡고 벌어야 해’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좋은 선배님들 많이 만나 이야기도 듣고 하던 중에 박성호 선배님의 일을 도와주게 됐죠.” (임재백)
흘러가는 상황이 흥미롭다. 사실 박성호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개그맨이 소속사 없이 혼자 일하는 것도 놀랍지만, 자신에게 들어온 일에 대해 후배에게 의견을 구하고, 행사가 있으면 같이 가고 한다는 것도 놀랍다. 선배와 후배이지만 동료이기도, 연예인과 매니저의 관계를 변화무쌍하게 오가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이상을 활동하면서 숱한 후배들을 만났죠. 같은 사람이기에 마음과 코드가 맞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개그콘서트’가 종영한 이후에도 여러 후배들을 만나왔는데, (임)재백이와는 그런 코드가 맞았다고 생각해요. 자주 보다가 저에게 라디오 DJ 제안이 들어왔고, 재백이와 코드가 맞으니 혼자보다는 둘이 한다면 시너지가 나리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사실 재백이가 인지도는 부족해도 끼가 있고, 화면에 비춰지는 게 아닌 라디오 방송이라서 잘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있었죠. 그래서 라디오 DJ 제안이 들어왔을 때 재백이에게 의견을 구했고, 함께 DJ를 하면서 더 가까워졌죠.” (박성호)
“사실 박성호 선배님이 행사가 있으면 같이 가자고 제안을 많이 해주셨어요. 선배님이 받는 돈에서 제게 떼어주셨는데, 사실 저를 데리고 가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잖아요. 제가 부담스러워할까봐 일부러 명분을 만들어서라도 챙겨주셨어요. ‘개그콘서트’ 종영 후 무기력했는데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살아있는 느낌을 주신거죠.” (임재백)
“재능 있는 후배가 꿈을 접고 다른 길로 갈 수 있다는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재능과 능력을 알고 있기에 제가 계속 부채질을 해주면 언젠가는 활활 타지 않을까요?” (박성호)
‘박성호의 눈’이라는 게 알음알음 있다고 한다. ‘박성호가 눈여겨 본 이들은 뜬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박성호는 김영철, 신봉선, 최효종, 신보라, 김준현, 정범균, 이국주 등이 ‘박성호 픽’에 속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박성호가 새롭게 ‘픽’한 이가 바로 임재백이다. 그리고 박성호는 임재백을 ‘장투’ 종목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장투’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박성호에게 임재백은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낯가림이 심한 박성호의 단점을 완벽히 보완해주는 것. 이는 자연스럽게 임재백이 박성호의 매니저라는 ‘부캐’를 얻게 되는 시작점이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하는 게 제 성격과는 맞지 않는데, 재백이는 그걸 잘해요. 라디오를 하면서 협찬이 들어오는데 재백이가 90%를 가지고 왔어요. 제작진이 정말 좋아하더라고요(웃음). 재백이를 1달만 써보자고 했다가, 세 달로 늘어났고, 개편 후에는 자동차 등록을 해주더라고요. 그거는 끝까지 같이 간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tbs FM ‘박성호의 사육의 이십사’에 함께 DJ로 활동 하고 있죠.” (박성호)
“저도 제 일을 하고, 같이 박성호 선배님을 케어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말씀들을 하시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너무 좋아요. 낯가림이 많은 선배님을 대신해 제가 할 수 있는 걸 해드리면 좋은 거고, 박성호 선배님도 저를 챙겨주시니까요. 그리고 제가 경험하지 못한 걸 경험하게 해주시니 감사하죠. 한번은 제가 선배님에게 ‘제가 영감을 드릴테니 경험을 주십시오’라고 했던 적도 있어요. 그래서 서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의논도 많이 하죠. 윈윈하는 관계인가도 싶어요.” (임재백)
선배는 후배를 끌어주고, 후배는 선배를 따르면서 서로 뭔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박성호와 임재백의 관계를 통해 그려지고 있다.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하는 움직임이 조금씩 보이는 가운데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건 박성호와 임재백의 관계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이 간다.
엄격한 기수 문화로 지적을 받았던 개그맨들의 사회지만 가족 같은 끈끈함과 유대감이 생겼고, ‘개그콘서트’ 종영 후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각자의 길을 갈 수도 있지만 가족처럼 서로를 챙기고 이끌어주면서 미래를 도모하고 있는 것. 임재백을 이끌어주는 박성호의 모습처럼 선배의 선한 영향력이 후배들에게 위로와 응원이 된다면 꽃길의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임재백은 제게 크레파스 같아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색이 많은데, 제가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도와줘야죠. 아직은 서툴지만 좋은 작품이 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제가 또 몇 번의 명작을 그린 바 있기 때문에 임재백도 분명히 좋은, 훌륭한 작품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성호)
“박성호 선배님에게 ‘우주의 기운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고 말을 하곤 해요. ‘좋다, 좋다’라고 생각하면 그런 기운이 오기 마련이잖아요. 특히 선배님에게 원래 일이 많으신건지 올해 일이 많아진건지 여쭤보기도 했는데 올해 좀 많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게 동기부여를 주시고,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재백)
※ ‘개그콘서트’ 장희정 작가의 한줄평
개그콘서트를 일년 동안 함께 하면서 본 임재백은 터키 아이스크림 같은 연기자다. 줄듯 말듯 결국 한 입 먹으면 달콤한 터키 아이스 크림처럼 지금은 뜰듯 말듯 하지만 결국 유재석처럼 한방이 있는 연기자 임재백의 그 맛을 기대해도 좋다!
/elnino8919@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