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는 지난 18일 대전 롯데전에서 7회 유장혁 타석에 이성열을, 9회 박정현 차례에 정은원을 각각 대타로 투입했다. 성장 과정의 젊은 선수들이 승부처에도 압박감을 견디고 극복할 기회를 주기 위해 대타 카드를 아끼던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답지 않은 이례적 선택이었다.
이튿날 수베로 감독은 "시즌이 꽤 지났다. 선수들이 본인 플레이와 결과에 책임감을 가져야 할 시기가 왔다. 지금까지 웬만해선 대타나 대주자를 내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다. 경기 후반 이기는 방향으로 벤치 개입이 있을 수 있다"며 경기 운영에 변화를 예고했다. 그 전날에도 수베로 감독은 "1군 야수 엔트리에 외야수가 (시즌 초보다) 1명 더 많은 상황이다. 이번주를 마친 뒤 내야수 1명을 콜업할 수도 있다"며 엔트리 변동 가능성도 알렸다.
수베로 감독 말대로 정규시즌도 어느덧 전체 일정의 26%를 소화했다. 리빌딩 팀으로서 선수 파악과 성장에 포커스를 맞춰온 수베로 감독도 조금씩 운영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이 역시 큰 틀에서 보면 리빌딩의 일환이다.

그는 "아기가 태어나면 처음에 누워 있지만 조금씩 기어다닌 뒤에는 일어서서 걷게 된다. 본인 힘으로 걸어다닐 수 있게 하는 과정이다"며 "선수들에게 말한 책임감이란 그들이 모든 부분을 다 책임지란 뜻이 아니다. 특정한 부분에서 선수들이 해줘야 할 부분을 말한다. 큰 틀에서는 (리빌딩) 기조가 바뀐 것은 아니지만 다음 레벨로 올라가기 위해 동기 부여하는 차원이다"고 강조했다.

수베로 감독 체제에서 한화는 젊은 선수들에게 전폭적인 기회가 주고 있다. 1~2군 엔트리 변동도 거의 없다. 실패할 자유를 마음껏 줬지만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실수, 성장통이 동반되고 있다. 부정보다 긍정 위주로 보며 선수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불어넣던 온화한 리더십의 수베로 감독이지만 조금씩 패배가 쌓이면서 흐트러진 분위기를 놓치지 않았다. 부임 후 가장 강력한 메시지로 무한한 기회 보장이 없을 것이라는 적절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지난 19일 롯데전에서 투타 조화 속에 12-2 대승을 거둔 한화는 분위기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날 만루 홈런 포함 3안타 5타점 맹타를 휘두른 최고참 선수 이성열은 "(지난 5~6일) 삼성전 이후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을 느꼈고, 감독님께서도 그런 부분을 인지해서 책임감을 주문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야구장에 출근할 때 보면 4월에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5월 들어 성적이 안 좋은데 어린 친구들이 경험이 없다 보니 예견된 것이다. 선수들끼리도 두 번 미팅을 했다. 야구로 치면 1회초부터 이제 시작하는 단계의 선수들이다. 지금 당장 지치고 힘들겠지만 너무 주눅들지 말고 활기차게, 젊은 팀다운 패기를 보여주자는 말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성적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위기가 찾아오자 수베로 감독은 "시즌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팬들께서 조금만 더 인내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이성열도 "저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모든 선수들이 이겨내야 하는 과정에 있다. 팬들께서 참고 기다려주시면 좋은 성적이 따라올 것이다. 수베로 감독님이 잘 이끌어주시지 않겠는가"라며 팬들에 다시 한 번 응원을 부탁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