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타율 1할대의 부진에 마음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다. KT 19년차 내야수 박경수는 쐐기 투런포를 때려내고도 “내가 인터뷰를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박경수는 지난 20일 수원 두산전에서 8회초 대수비로 출전해 쐐기 홈런의 주인공이 됐다. 2-1로 근소하게 앞선 8회말 1사 1루서 첫 타석을 맞이한 그는 1B-1S에서 박치국의 3구째 체인지업(126km)를 받아쳐 좌월 2점홈런으로 연결했다. 지난 5월 26일 수원 SSG전 이후 무려 20경기만에 나온 시즌 6번째 홈런이자 승부의 쐐기를 박는 한방이었다.
그러나 박경수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2015년 KT 입단 후 거포 내야수로 변신한 그의 시즌 타율이 .171까지 떨어져 있었기 때문. 그는 “(홈런이) 오늘 경기 승리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됐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안 좋았던 걸 다 잊을 순 없다”며 “내가 인터뷰를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씁쓸해했다.

최근 6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에 빛나는 박경수는 이날 홈런 전까지 50경기 타율 .171 5홈런 15타점 OPS .590으로 침묵 중이었다. 5월 29일 광주 KIA전에서 타율 2할대가 무너진 뒤 한 달 가까이 1할대에서 허덕이고 있었던 상황. 해결사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득점권 타율마저 .125로 상당히 저조했다.
박경수는 “이렇게 부진이 길어질 줄 몰랐다. 멘탈적으로 가장 지치는 시즌”이라며 “감독님, 코치님들, 팬들 얼굴을 솔직히 못 보겠더라. 게다가 SNS로 오랜만에 (악플도) 받아봤다. 프로 선수이기에 결과를 못 내면 욕을 먹는 건 당연하나 선을 넘는 것도 꽤 있었다. 또 알고 봤더니 강백호, 배제성, 황재균 등 다른 후배들도 이런 것들도 고충을 겪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거듭된 부진에 타격폼 수정까지 시도했지만, 아직 효과는 크지 않다. 박경수는 “코치님과 전력분석팀과 상의를 해봤는데 아직 배트 스피드는 괜찮다고 했다. 결국 타격 매커니즘과 멘탈 문제인데 현재 최대한 간결하면서도 컴팩트하게 칠 수 있는 매커니즘을 찾고 있는 중”이라며 “원래는 한, 두 경기 못 치더라도 2주, 한 달, 두 달을 칠 수 있는 폼을 생각했는데 막상 중요한 찬스가 걸리 이도저도 안 됐다. 타석에서 투수가 아닌 나와 싸우고 있는 내 자신이 바보 같았다”고 자책했다.
그러나 자신을 그 누구보다 응원해주는 후배들이 있기에 외롭지 않았다. 박경수는 “오늘 (조)용호가 와서 내가 홈런을 칠 것 같다는 예언을 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했지만 진짜 홈런이 나왔다. 더그아웃에서 용호가 눈을 크게 뜨고 날 반기고 있었다”며 “다른 선수들도 너무 좋아해줘서 감동을 받았다. 굉장히 미안했는데 더 미안해졌다. (황)재균이는 본인이 4타수 무안타인데 내 홈런에 기분이 좋다고 말해줬다. 고참으로서 이런 팀 분위기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뭉클한 마음을 전했다.
다만, 홈런이 나왔다고 방심은 없다. 아직 박경수의 노력은 결실을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부진이 길어지니 정말 한 없이 길어진다”며 “아무래도 조금 더 확실히 내 것을 정립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납득이 되는 타석을 만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 반등하겠다”고 부진 탈출을 기원했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