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대구 삼성-롯데전. 1-3으로 뒤진 7회초 선두 타자로 나선 롯데 이대호는 삼성 세 번째 투수 심창민의 2구째 커브(119km)를 힘껏 받아쳤다.
타구는 중견수 방면으로 멀리 뻗어나갔다. 펜스를 직격할만한 타구였지만 박해민이 펜스를 밟고 날아올라 타구를 걷어냈다. '박해민이 박해민했다'는 표현이 잘 어울릴 듯. 이대호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덕아웃으로 돌아갔고 마운드에 선 심창민은 박해민을 향해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날 경기 해설을 맡은 박용택 KBSN 스포츠 해설위원은 "중계하면서 만루 홈런 같은 게 나와도 와 하는 소리가 안 나오는데 소름이 끼치는 수비였다. 펜스를 타는 타이밍도 너무 좋았다. 정말 멋진 수비가 나왔다. 착지도 10점 만점에 10점이다. 흔들림이 없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박해민이 아니었다면 잡아낼 수 없는 타구였다. 야구에 만약이란 건 없지만 선두 타자 이대호의 타구가 중견수 플라이가 아닌 2루타가 됐다면 삼성의 승리는 장담할 수 없었을 터. 허삼영 감독은 "7회 박해민은 사실상 1이닝을 삭제시켜준 호수비로 벤치에 파이팅을 불어넣어 줬다"고 표현했다.
5이닝 1실점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춘 뒤 마운드를 내려온 원태인은 박해민의 수퍼 캐치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삼성에 해민이 형이 없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무키 베츠(LA 다저스)가 하는 수비를 라팍에서 보게 되어 좋았다. 해민이 형이 중견수를 맡고 있다는 게 투수에게 정말 큰 힘이 된다. 타구가 중견수 방면으로 가면 해민이 형이 다 잡아낸다. 해민이 형이 못 잡으면 그 누구도 잡을 수 없는 타구라고 생각한다".
삼성 투수들은 2사 후 타구가 중견수 방면으로 향하면 천천히 마운드로 발걸음을 옮긴다. 원태인도 "저도 그렇다. 타구가 중견수 쪽으로 날아가면 '아 (아웃)됐구나' 하고 로진백을 챙겨 들어갈 준비를 한다"고 웃어 보였다.
![[사진] OSEN DB](https://file.osen.co.kr/article/2021/07/11/202107110635778796_60ea13cb44928.jpg)
수퍼캐치를 선보인 박해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잘 맞은 타구였지만 잡을 수 있겠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궤적이 높아 순간적으로 펜스를 밟고 올라가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는 "덕아웃에 돌아왔을 때 동료들이 소름 돋는다는 말을 해줬다"고 씩 웃기도.
박해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비력으로 '수비의 심장'이라는 애칭도 있다. 호쾌한 홈런만큼이나 짜릿하다. 강한 어깨는 아니지만 넓은 수비 범위는 단연 최고. 박해민이 안방에서 명품 수비를 연출할 때마다 삼성 팬들의 함성이 쏟아진다.
그는 지난해 일본 오키나와 캠프가 끝날 무렵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수비 가치가 폄하되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박해민은 "어떤 구기 종목이든 이기려면 수비가 중요하다는데 막상 수비를 잘하면 상대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게다가 수비를 잘해도 공격을 못 하면 더 심하다"고 말했다.
이어 "수비 잘하는 선수는 다른 부분까지 잘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반면 공격만 잘해도 인정을 받는다. 야구뿐만 아니라 모든 구기 종목이 다 그렇다"고 덧붙였다.
박해민은 또 "수비를 잘하는 선수는 말 못 할 고충이 있다고 본다. 수비를 잘한다고 슈퍼스타가 될 수 없다. 공격을 잘해야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슈퍼스타 대우를 바라는 게 아니다. 수비를 잘하는 선수에 대한 가치를 조금 더 인정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젠 서운한 마음을 접어도 될 것 같다. 박해민이 수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wha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