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백호(22·KT)가 올림픽 야구 노메달의 원흉으로 몰렸다.
2020 도쿄올림픽 야구 동메달 결정전이었던 지난 7일 도미니카공화국전. 한국이 6-10으로 역전을 당해 패색이 짙던 8회초 2사 1루에서 중계 카메라는 한국 덕아웃의 강백호를 비췄다. 덕아웃 앞에 몸을 기대 입 밖으로 껌을 질겅질겅 씹는 모습이 딱 걸렸다. 이를 본 박찬호 KBS 해설위원이 "안 됩니다. 비록 질지언정 우리가 보여줘선 안 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됩니다. 계속 미친듯이 파이팅을 해야 합니다. 끝까지 가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고 파이팅을 외치길 바라는 대선배의 메시지였다.
분명 보기 좋지 않은 모습이었고, 비판받아 마땅한 태도였다. 김경문 대표팀 감독도 강백호의 껌 씹기 논란에 대해 무의식 중에 나온 행동이라고 설명하며 "선배들과 지도자들이 가르치고 주의를 주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를 넘은 비난이 강백호에게 향하고 있다. 한국 야구 참사의 원흉이자 역적으로 내몰렸다. 가뜩이나 기대 이하 경기력과 최악의 결과에 분노한 팬심이 강백호의 껌 씹기에 폭발했다.

여론은 강백호의 모습에 대표팀 정신력 해이, 투지 부족을 이야기하고 있다. 야구 원로들도 안타까운 마음에 한마디씩 보태면서 선수들이 배가 부르고 투지 없어서 메달을 따지 못한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은 강백호가 상징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강백호는 이날 5회 역전타를 치고 1루에서 포효했다. 6회 위기 때는 덕아웃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안절부절 못했다. 경기 종료 후에는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감싸쥐었다. 강백호뿐만 아니라 대회 기간 선수들은 투지와 승부욕을 발휘했다. 목 피부가 찢어져 5바늘을 꿰맨 오지환은 몸에 오는 공을 피하지 않고 맞았다. 박해민은 얼굴에 흙이 다 튈 정도로 몸을 사리지 않았고, 김현수는 노메달 확정 후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렸다. 오승환도 전에 볼 수 없었던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국제대회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게 '정신력' 타령이다. 투지, 근성, 눈빛, 열정, 간절함, 절박함 등 측량할 수 없는 감정의 영역으로 평가한다. 베이스 커버 미스나 전력 질주 포기 같은 안일한 플레이는 질책을 받아야 하지만 선수 표정이나 찰나의 순간 포착으로 싸잡아 비난하는 건 집단 광기, 마녀사냥밖에 되지 않는다.

특정 선수를 화풀이, 분풀이, 욕받이 대상으로 삼을 때가 아니다. 선수들도 잘한 것 없지만 문제의 본질을 외면해선 안 된다. 이번 올림픽 대표팀의 실패는 한두 가지 문제가 아니다. 선수 선발 때부터 자신만의 기준으로 팀을 구성해 논란을 자초한 김경문 감독의 경직된 선수 운용 실패, 수비 시프트 한 번 걸지 않고 상대의 데이터 분석에 걸려드는 등 현대 야구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한 준비 부족이 여실히 드러났다.
리그 전체의 경기력 하락과 선수들의 실력 부족, 신뢰를 잃은 KBO와 10개 구단 및 야구인들의 무사안일한 자세가 대참사의 본질이다. 스트라이크존 확대 등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변화를 고심해도 모자랄 판에 구단 이기주의가 판을 친다. 사건사고마다 제 식구 감싸기 바쁘다. 음주운전을 해도, 폭력을 해도, 약물을 해도 야구만 잘하면 눈감아주고 MVP까지 주는 게 창피한 현실이다.
급기야 코로나 시국에 원정 숙소에 여자들을 불러 술판을 벌이는 반사회적 행위가 발각됐다. 그런데도 KBO와 구단들은 늘 그렇듯 어설픈 징계로 면죄부를 줬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쉬쉬하며 감추기 급급하니 사고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팬들이 하나둘씩 등을 돌리며 야구를 혐오하기 시작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데 '윗분'들부터 정신을 못 차리니 선수들의 프로 의식도 망가졌다.

어느 순간부터 야구대표팀은 응원보다 비난이 익숙해졌다. 영광보다 부담이 백배 크다. 매번 특정 선수들에게 책임이 전가되고, 그들은 역적 취급을 받으면서 여론의 분풀이 대상이 됐다. 선수 죽이기로 한국 야구의 위기가 해결되진 않는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