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투수 정우람(36)은 KBO리그 역대 최고의 불펜투수로 손꼽힐 만한 대선수다. 지난 2004년 데뷔 후 올해까지 16시즌 통산 909경기에 등판하며 64승43패191세이브129홀드 평균자책점 3.02 탈삼진 877개를 기록 중이다. 나갈 때마다 역대 투수 최다 등판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정우람은 세이브와 홀드 모두 120개 이상 기록한 유일한 투수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14년 연속 45경기 이상 등판한 꾸준함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지난 17일 대전 삼성전에서 8년 연속 10세이브 기록을 세웠다. 군복무 기간(2013~2014년)을 제외하고 지난 2012년 SK 시절부터 8년째 두 자릿수 세이브를 이어갔다. 이 기록은 KBO리그 역대 최다 322세이브를 기록 중인 '끝판왕' 오승환(삼성)도 하지 못했다. 오승환은 2010년 팔꿈치 부상과 수술로 4세이브에 그치며 10세이브 연속 기록이 앞뒤로 각각 5년으로 끊겼다. 정우람에 앞서 구대성(1994~2007년 한화, 2001~2005년 해외 진출 기간 제외)과 손승락(2010~2018년 넥센·롯데)만이 9년 연속으로 이 기록을 갖고 있다.
KBO리그 역대 3번째 의미 있는 기록을 세웠지만 정우람은 웃지 못했다. 올 시즌 부진에 기록을 신경 쓸 여유가 없다. 30경기에서 1승2패10세이브 평균자책점 4.91. 신인 시절로 딱 2경기만 던진 2004년(6.75) 이후 가장 높은 평균자책점으로 커리어 최악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지난 6월30일 대전 두산전에서 개인 최다 5실점으로 무너진 것을 시작으로 최근 8경기 2패2세이브 평균자책점 13.50으로 무너졌다. 14~15일 대전 NC전에서 연이틀 9회에 실점했다.

정우람답지 않게 공이 높게 날리고 제구가 흔들리며 스스로 무너지길 반복하고 있다. 30대 후반 나이를 감안하면 정우람의 하락세가 언제 찾아와도 이상할 게 없다. 젊은 선수들 위주로 리빌딩 시즌을 보내고 있는 한화로서는 정우람 다음 마무리투수를 준비해야 할 시기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수베로 감독은 "정우람은 커맨드가 좋은 투수인데 최근 볼이 많아졌다. 여러 코스로 공을 보여주며 다양한 패턴으로 승부하는 유형이라 볼이 아예 없을 수 없지만 평소보다 많아졌다. 타자에게 유리한 볼카운트를 많이 넘겨주다 보니 어려움을 겪는다"고 문제점을 짚으면서도 "마무리 자리는 변수가 많다. 지금 당장 다음 계획을 말하기 쉽지 않다. 현재는 정우람이 우리 팀의 마무리"라고 말했다.

어떻게든 정우람을 살려 쓰겠다는 게 수베로 감독 생각. 꼭 9회가 아니어도 여유 있는 상황에서 투입해 컨디션을 찾게 하는 방법도 구상 중이다. 수베로 감독은 "예전 경험으로 보면 마무리가 흔들릴 때 세이브가 아닌 상황에 나와 자신감을 쌓고 원래 자리로 가는 방법도 있다. (메이저리그 통산 437세이브를 거둔)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도 그런 방식으로 컨디션을 찾곤 했다. 여러 가지 방법을 두고 정우람과 이야기해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여유 있는 상황에 투입할 가능성을 열어둔 수베로 감독이었지만 팀 사정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올 시즌 3세이브를 거둔 셋업맨 강재민이 지난 14일 웨이트볼로 몸을 하다 손가락을 다쳐 이번 주중 휴식을 갖게 됐고, 정우람은 17일 대전 삼성전도 9회초 4-2로 앞선 상황에서 마무리로 나섰다. 첫 타자 김헌곤에게 볼넷을 내주며 불안하게 시작했지만 강민호를 병살타로 유도하며 한숨 돌렸다. 이어 이학주를 루킹 삼진 처리하며 모처럼 무실점 세이브를 거뒀다.
하지만 기록 달성의 여운을 느낄 만한 여유가 정우람에겐 없었다. 경기 후에도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도 정중하게 고사한 정우람은 "최근 부진한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하다. 지금 내게 기록은 무의미하다. 모두 열심히 해주고 있는데 그저 팀에 미안한 마음뿐이다"는 말을 전했다. 정우람은 앞서 KBO리그 역대 최다 902경기 출장 기록을 세운 날에도 5실점으로 무너져 소감을 생략한 바 있다.

수베로 감독은 이날 경기 후 "정우람이 그동안 업다운을 이겨내고 좋은 모습으로 경기를 마무리해줬다"며 다시 한 번 힘을 실어줬다. 수베로 감독도 시련의 계절을 딛고 기분 좋게 인터뷰하게 될 정우람을 기다릴 것이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