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좌완 투수 백정현(34)은 지난 2007년 2차 1번 전체 8순위로 지명됐다. 대구 상원고 3학년 시절 무릎 십자인대를 다쳐 수술을 받고 재활을 하느라 한 경기도 던지지 않았지만 꾸준하게 관찰해온 삼성이 상위 순번으로 백정현을 지명했다. 매년 일본 스프링캠프 때마다 '오키나와 커쇼'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그러나 좀처럼 잠재력이 터지지 않았다. 2015년까지 1군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16년 불펜으로 1군에 자리잡은 뒤 2017년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진입했다. NC전에 유독 강한 면모를 보였지만 나머지 팀들을 상대로는 평범한 4~5선발에 가까웠다. 어느새 나이도 30대 중반으로 향하면서 입단 당시 특급 유망주의 기억은 잊혀지는 듯했다.
하지만 입단 15년차가 된 올해, 백정현의 기량이 만개했다. 18경기에서 103⅔이닝을 소화하며 10승4패 평균자책점 2.17로 커리어 최고 성적을 내고 있다. 데뷔 첫 10승과 함께 평균자책점은 리그 전체 1위. 6월(0.88) 7월(0.66) 8월(0.00) 모두 0점대 평균자책점으로 갈수록 더 위력적이다. 지난 2010년 한화 류현진(1.82) 이후 11년 만에 규정이닝 1점대 평균자책점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사진] 2007년 신인 시절 백정현 /OSEN DB](https://file.osen.co.kr/article/2021/08/19/202108191850775787_611e76bbc5d4e.jpg)
다승 공동 2위에 이닝도 전체 5위이자 국내 투수 1위. 이제는 리그 MVP 후보라 할 만하다. 투수 쪽에선 넘버원 성적을 찍고 있는 백정현은 꿈의 4할 타율에 도전 중인 강백호(KT)의 MVP 레이스 대항마로 급부상하고 있다. 만 34세 늦은 나이에 찾아온 전성기다.
백정현이 입단할 때부터 쭉 지켜봐온 허삼영 삼성 감독은 "이제 기량이 만개하는 대기만성형 선수다. 자신의 야구 길을 열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이는 있지만 길게 좋은 투구를 할 수 있는 능력과 인성을 가졌다. 특별한 부상 이슈가 없는 한 오랫동안 활약할 것이다"고 기대했다.
직구 평균 구속은 137km로 140km때 중반을 던지던 20대 시절과 비교하면 많이 느려졌다. 하지만 전혀 만만한 공이 아니다. 허 감독은 "볼을 남발하는 빠른 공은 효용 가치가 없다. 백정현은 구속이 140km 이상 나오지 않지만 익스텐션이 길고, 수직 무브먼트가 좋다. 타자들이 130km대 중후반 직구에도 헛스윙을 하는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허 감독은 "원하는 곳에 던질 수 있는 제구력이 생겼다. 상대 타자 약점에 맞춰 핀포인트로 던질 수 있는 게 가장 큰 변화"라며 멘탈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원래 말수가 없고, 표정 변화도 없다. 심성이 좋은 선수이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마운드에서 투쟁심이 있다. 건실하고 근면하고 성실하다"고 거듭 칭찬했다.
프로 데뷔 후 최고의 시기를 보내며 어느 때보다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백정현답게 무덤덤하다. "주변에서 10승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 어렸을 때는 하고 싶었지만 못했다. 지금은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다. 평균자책점도 크게 의식 안 한다. 올해 제구에 집중해 훈련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 백정현의 말이다.

시즌을 마친 뒤 백정현은 데뷔 첫 FA 자격을 얻는다. MVP급 시즌 이후 FA, 시기적으로 딱 좋다. 30대 중반의 나이가 아쉽지만 리그 정상급 선발투수는 모든 팀들이 탐낼 수밖에 없다. 마음이 들뜰 법도 하지만 FA에 대해서도 "감흥이 별로 없다. 신경 쓴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는 백정현다운 대답이 나왔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