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위즈 고영표에게 올림픽 한일전 선발등판은 어떤 의미였을까. 처음 한일전 등판 소식을 들었을 때 긴장이 되진 않았을까.
고영표는 지난 2020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야구를 이끌 차세대 에이스로 주목을 받았다. 생애 첫 국가대표팀 승선이었지만, 침착하게 자기 공을 던지며 국제무대에서의 경쟁력을 입증했다. 조별예선 미국전에서 4⅔이닝 4실점으로 데뷔전을 치른 그는 한국야구 에이스의 전유물인 한일전 선발을 맡아 5이닝 7탈삼진 2실점으로 호투하며 양 국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지난 22일 사직 롯데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고영표를 만나 당시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김경문 대표팀 감독이 처음부터 고영표를 한일전 선발투수로 낙점한 건 아니었다. 고영표는 8월 4일 승자 준결승 선발로 내정이 됐고, 일본이 녹아웃스테이지 2라운드에서 미국을 꺾고 한국과 맞붙게 되며 자연스럽게 고영표가 한일전 선발의 중책을 맡게 됐다.

고영표는 “사실 처음에는 미국이 올라오길 바랐다. 조별예선에서 미국에 당한 걸 되갚아주고 싶었다”며 “상대가 일본으로 결정된 뒤 그 때는 긴장이 많이 됐다. 한일전에 나간다는 생각을 아예 안했었고, 그 동안 사이드암투수가 한일전 선발로 나선 경우도 없었다. 과연 내가 나가도 되나 싶었다. 그러나 오히려 날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당시를 되돌아봤다.
그리고 한일전은 고영표가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예리한 체인지업이 KBO리그보다 한 수 위인 NPB 타자들에게도 통했기 때문. 고영표는 “일본 타자들 상대로도 꿀리지 않아 기분이 좋았다”며 “일본 타자들 스윙이 생각보다 컸다. 그런 부분이 오히려 삼진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사실 일본 타자들은 모두 컨택형일 줄 알았는데 거포형이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무거운 국제대회에 나가 큰 경험이 됐고, 야구를 더 배워온 것 같다. 타국 선수들 기량을 보고 발전의 필요성을 느끼고 왔다”고 성과를 덧붙였다.
다만, 올림픽을 통해 얻은 자신감이 모두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진 건 아니었다. 자신감 과다로 후반기 첫 경기였던 15일 수원 삼성전에서 6이닝 동안 4점을 헌납했다. 고영표는 “리그 돌아와서 독이 된 부분도 있었다. 괜히 마운드에서 더 잘하고 싶고, 잘해야 한다는 욕심이 생겼다. 삼성전에서 그런 내 자신이 싫었다”며 “이후 다시 코치님과 대화하면서 마음을 다잡은 게 오늘(22일) 좋은 투수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미국전과 일본전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한 고영표는 이제 후반기 KT의 창단 첫 우승을 향해 달린다. 올림픽이라는 단기전에서의 경험이 가을야구에서도 빛을 발휘하길 기대하고 있다. 고영표는 “좋은 예행연습이었다. KT의 포스트시즌 확률이 높아졌기에 그런 부분에서 좋은 경험을 했다”며 “향후 무실점 투구를 통해 팀의 선두 수성에 힘을 보태겠다. 내 승리보다 팀의 1위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각오를 다졌다. /backlight@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