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때는 진짜 다리가 떨렸어요.”
27일 수원 SSG전에서 8회 결승타를 때려낸 허도환(37·KT)은 경기 후 취재진을 만나 3년 전 한국시리즈 우승 확정 순간을 떠올렸다. 당시 소속팀은 공교롭게도 이날 상대팀이었던 SSG의 전신 SK 와이번스.
허도환은 2018년 11월 12일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4-4로 맞선 연장 12회말 포수 마스크를 쓰고 문승원과 삼자범퇴 이닝을 합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13회초 한동민(개명 후 한유섬)이 유희관의 초구에 극적인 솔로홈런을 치며 마침내 동점의 균형을 깼다.
5-4로 앞선 13회말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김광현. 우승까지 남은 아웃카운트 3개를 잡기 위해 에이스가 직접 출격했다.
허도환과 김광현의 케미는 완벽했다. 선두 백민기를 2루수 직선타 처리한 뒤 양의지와 박건우를 연달아 헛스윙 삼진으로 잡고 경기를 마무리지은 것. 우승이었다. 허도환은 마운드로 달려가 전광판을 향해 만세를 부른 김광현을 뒤에서 격하게 끌어안았다.
3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머릿속에는 당시의 감동이 여전히 생생히 남아 있었다. 허도환은 “정말 앉아있기가 힘들 정도로 다리가 떨렸다”고 웃으며 “투수들이 잘 막아주며 운 좋게 내가 마지막에 나갈 수 있었는데 정말 떨렸다. 그러나 그 기분을 다시 느껴보고 싶긴 하다”고 전했다.
허도환은 프로 15년차인 올해 다시 그 떨림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소속팀 KT가 90경기를 치른 현재 2위 LG에 3.5경기 앞선 선두를 유지 중이기 때문. 이강철 감독 특유의 리더십과 탄탄한 선발진, 신구조화를 앞세워 지난 13일 1위로 올라선 뒤 보름이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별히 긴 연승을 달리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연패도 잘 빠지지 않는다. 큰 기복 없는 경기력이 KT의 가장 큰 강점이다.

허도환은 “작년 초반만 해도 지고 있으면 분위기가 가라앉았는데 올해는 1, 2명 정도 나가면 뒤집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다들 있다. 지고 있어도 자꾸 따가려고 한다”며 “고참으로서 보기 좋다. (유)한준이형과 (박)경수가 이런 문화를 잘 만들어놔서 승승장구하고 있지 않나 싶다”고 선두 KT를 분석했다.
허도환은 백업임에도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제 몫을 해내며 작게나마 1위 수성에 보탬이 되고 있다. 허도환의 올 시즌 득점권 타율은 6할에 달하며 특히 만루에서 3타수 3안타 1홈런 7타점으로 상당히 강했다.
허도환은 “만루에 나간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도 나갈 때마다 안타를 쳐서 기분이 좋다”며 “어릴 때는 ‘내가 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투수도 떨리는 건 마찬가지다. 내가 먼저 주눅 들 필요는 없다”고 비결을 전했다.
이제 허도환의 시선은 커리어 두 번째 우승반지로 향한다. 야구선수에게 반지는 한 개가 있어도 또 갖고 싶은 그런 것. 허도환은 “올해 우리 선발이 너무 강하고 타선도 짜임새가 좋다. 그래서 기대가 되는 게 사실”이라며 “야구는 선발 놀음이다. 선발이 좋으면 순위가 올라가기 마련이다. 여기에 좋은 마무리까지 있다”고 내심 기대를 드러냈다.
그러기 위해선 남은 54경기를 지금처럼 즐기면서 할 필요가 있다. 이는 경험이 부족한 KT 어린 선수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자만이 왕좌에 오를 수 있다.
허도환은 “부담을 가지면 될 것도 안 되더라. 즐기면서 할 때 오히려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항상 재미있고 즐기면서 하는 게 중요하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