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관두고 소 키우려 했던 이성열 "3번의 트레이드가 선수 만들었다"
OSEN 이상학 기자
발행 2021.08.29 06: 02

"3번의 트레이드가 선수 하나 만들었다."
한화의 베테랑 거포 이성열(37)이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지난 14일 대전 NC전 3회 만루 홈런을 끝으로 정든 유니폼을 벗었다. 2주 동안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 뒤 이날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현역 마지막 타석을 만루 홈런으로 장식하며 19년 커리어를 마감했다. 
순천 효천고 출신으로 지난 2003년 LG에 2차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입단한 이성열은 거포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포수에서 외야수로 포지션을 바꾸는 등 데뷔 초에는 프로의 벽에 부딪쳐 자리를 잡지 못했다. 한때 야구를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가 목장에서 소를 키우는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한화 이성열 2019.03.24 /dreamer@osen.co.kr

그럴 때마다 트레이드가 이성열을 정신 번쩍 들게 했다. 2008년 6월 두산으로, 2012년 7월 넥센(현 키움)으로, 그리고 2015년 4월 한화로 3번의 트레이드를 경험했다. 한화 이적 후 마침내 30홈런 100타점 타자로 잠재력을 터뜨렸다. 올해까지 19년을 롱런하며 통산 1506경기 타율 2할5푼3리 1047안타 190홈런 698타점의 성적을 남겼다. KBO리그 역대 통산 홈런 34위, 타점 52위. 
28일 은퇴 발표 후 대전 홈구장 한화생명이글스파크를 찾아 선수단과 인사를 나눈 이성열은 다음주부터 한화 퓨처스팀 전력분석원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다음은 이성열과 일문일답. 
[사진] 2015년 4월9일 대전 LG전에서 이성열이 6회 한화 이적 첫 홈런을 역전 투런포로 장식한 뒤 기뻐하고 있다. /OSEN DB
-은퇴를 결정한 소감은. 
▲ 마지막 경기 만루 홈런을 치고 은퇴를 결정했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님께서 ‘여기까지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경기 후 (정민철) 단장님과도 얘기해서 은퇴하겠다고 했다. 아쉽다. 2주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을 내려놓았다. 마지막 타석이 만루 홈런이 돼 기쁘다. 
-언제부터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나. 
▲ 시즌을 다 마치고 홀가분하게 미련 없이 결정하려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시즌 중 은퇴는 갑작스러웠고, 결정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은퇴 발표가) 더 빨리 났어야 했는데 조금 늦어지게 됐다. 
-한화 선수단과 인사를 했는데. 
▲ 한화에서 7년을 생활했다. 좋은 날도, 슬픈 날도 있었는데 후배들한테 짐을 주고 떠나는 것 같아 미안하다. 시즌을 잘 마무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중간에 빠져 형으로서 미안하다. 하늘에 구름이 지나가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 화창한 날이 온다. 앞으로 잘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선수들에게 절대 기죽지 말라고 했다. 후배들에게 못 해준 게 많은데 앞으로 또 다른 길로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나가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 NC전이 끝난 뒤 아내에게 말했다. 크게 표현하지 않는데 마음속으로 아쉬웠을 것이다. 아이들은 4~6살이라 아직 (은퇴를) 인지 못한다. 왜 (야구하러) 안 가냐고 반복적으로 말한다. 가장 슬픈 건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이다. 야구장에 오시지 못하고 TV로 마지막 경기를 보시게 돼 저 역시도 아쉽다.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시지만 서운해하신다. 양가 부모님께 죄송스럽다. 
LG 이성열 2006.09.03 / ajyoung@osen.co.kr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 4개 팀에서 뛰었으니 기억에 남는 순간도 많다. 먼저 LG에서 프로 입단해 가장 기뻤다. 프로야구는 꿈도 꾸지 않았는데 영광스럽게 지명을 받았다. 3년차에 첫 홈런(2005년 5월12일 잠실 한화전 지연규 상대) 친 것이 기억에 난다. 
두산 시절에는 2010년 제일 잘했다. (3월27일) 개막전 엔트리에 3번 지명타자로 나왔고, (3회) 고영민 지금 두산 코치님과 같이 백투백 홈런을 쳤다. 그날 많은 관중 속에 야구장을 찾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키움에선 별로 못했지만 염경엽 감독님이란 좋은 분을 만나 기회를 받았다. (2013년) 홈런 18개로 딱히 많이 친 것은 아닌데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한화에선 7년이란 시간을 보냈다. 2015년 4월8일 한화로 트레이드가 발표나고, 9일 엔트리에 등록됐다. 그날 두 번째 타석에서 홈런을 쳤다. 한화에서 첫날 홈런으로 인사를 드렸는데 마지막 타석도 홈런으로 인사를 하게 됐다. 홈런 30개를 친 2018년도 잊을 수 없다. (9월26일 대전 삼성전에서) 지금 우리 팀에 있는 정인욱에게 30호 홈런을 쳤다. 그해 한용덕 감독님과 팀원들이 잘해서 11년 만에 가을야구도 가고, 좋은 기억이 많다. 
100430 두산 이성열. / ajyoung@osen.co.kr
-애착이 가는, 의미 있는 기록이 있다면. 
▲ 1500경기를 뛴 게 의미 있다(역대 56번째). 30홈런 100타점(2018년 34홈런 102타점) 시즌도 해보고 떠나서 좋다. 3할 타율은 못 쳤지만 장타자로서 30홈런 100타점은 꼭 해보고 싶었다. 뿌듯하다. 여러 분들이 기회를 주신 덕분에 그런 기록을 낼 수 있었다. 
-그동안 고마웠던 지도자가 있다면. 
▲ 팀을 많이 옮긴 만큼 고마운 지도자 분들도 많다. LG에서 이광환 감독님과 이순철 감독님, 두산에서 김경문 감독님, 키움에서 염경엽 감독님이 기회를 주셨다. 한화에서 추억이 제일 많은데 한용덕 감독님께 정말 감사하다. 아직 연락을 드리지 못한 분들도 있는데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전력분석원으로 새롭게 시작하는데. 향후 지도자 생각은. 
▲ 구단에서 프런트 일에 관심이 있냐고 하셨다. 생각이 없지 않았는데 시기적으로 빨리 하게 됐다. 시즌 끝날 때까지 서산에서 전력분석 일을 배운다. 지도자에 대해선 아직 자세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내가 싫고 힘들었던 것을 되풀이하지 않게 해야 할 것 같다. 야구 외적으로 힘든 부분도 공유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보통 선수를 그만두면 다들 소통하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시대가 바뀐 만큼 당연한 것이다. 모든 선수들과 오해 없이 소통하는 지도자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사진] 넥센 시절 이성열(왼쪽)이 염경엽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OSEN DB
-과거 야구가 안 될 때 소를 키울까 고민도 했는데 이렇게 오래 뛸 줄 알았나. 
▲ 전혀 생각 못했다. 14~15년 전에는 야구를 그만두고 소를 키울까 생각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프로의 벽이 너무 높았고, 야구를 그만두고 부모님 곁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시절이 지금은 추억이다. 그렇게 해서 버틴 게 19년이다. 정말 웃기게 말하자면 그만두고 싶거나 힘든 타이밍에 딱 트레이드가 됐다. 지칠 때쯤 트레이드로 동기부여가 되고, 생존할 수 있었다. 트레이드가 선수 하나 만들었다(웃음). 
-3번의 트레이드 모두 시즌 중이라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 LG에 있을 때는 트레이드로 팀을 바꿔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두산에서 키움으로 갈 때는 힘들었다. 트레이드를 3번 해보니 처음에는 힘들더라. 각 팀마다 문화가 다른데 그런 부분에서 빨리 적응을 해야 한다. 많은 동료들이 도와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성열하면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사진] 한화 이성열이 28일 은퇴 발표 후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화 이글스 제공
▲ 경기가 지루할 때 뻥하고 시원하게 돌려서 홈런 쳤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팬 분들이 ‘뽕열포’라는 닉네임도 붙여주셨다. 그렇게 기억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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