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LA, 이사부 통신원] 모든 마이너리거의 꿈은 같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구단으로부터 전화를 받고 짐을 꾸려 이동해 메이저리그 팀에 합류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끝은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 팀이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뭔가를 해내며 주목을 받는 것이 궁극의 꿈이며 반대로 번트도 못 대고 아웃되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다.
28일(한국시간)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 벌어진 클리블랜드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경기에서 콜업된 날 '극과 극'의 상황을 맞본 선수가 있어 화제다. 바로 이날 마이너리그에서 콜업돼 선발로 뛴 보스턴의 2루수 조나단 아라우즈 이야기다.
보스턴의 트리플 A 팀인 우스터 레드삭스에서 뛰던 그는 이날 오후 1시(현지 시간)까지 뉴욕주 버팔로의 원정 숙소에서 늦잠을 자고 있었다. 버팔로는 얼마 전까지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임시 홈구장이 있던 곳이다.
![[사진] 보스턴의 조나단 아라우즈가 28일(한국시간) 프로그레시브 필드에서 열린 클리블랜드와의 원정 경기 8회서 역전 3점 홈런을 날린 뒤 환호하고 있다.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https://file.osen.co.kr/article/2021/08/29/202108290133776155_612a67bc5d5e0.jpg)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빨리 팀(보스턴)에 합류하라는 연락이었다. 키케 에르난데스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주전 2루수인 크리스티안 아로요가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면서 나란히 부상자 명단에 올라 내야에 공백이 생겼다.
원정 경기가 열리는 클리블랜드까지는 200마일(약 320km)로 차로 이동할 경우 3시간 정도면 가능한, 미국에서는 그나마 짧은 거리였다. 후다닥 짐을 꾸려 버스를 타고 이동한 아라우즈는 프로그레시브 필드에 경기 시작 2시간 전인 오후 5시가 조금 넘어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9번 타자 겸 2루수로 선발 투입.
정신없이 메이저리그 타석에 들어선 아라우즈는 첫 타석에서는 스윙 한번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루킹 삼진을 당했지만 두 번째 타석에서는 집요하게 볼을 골라내며 12구 승부를 펼친 끝에 볼넷을 골라 나갔다.
보스턴은 7회까지 1-3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팀에서 코로나19 환자가 나와 어수선한 분위기였고, 이때까지 안타도 1개밖에 치지 못하며 빈공에 시달리고 있었다.
8회 초. 바뀐 상대 투수 카린첵이 첫 타자 크리스티안 바스케스를 볼넷으로 내보냈고, 이어 재렌 두란이 안타를 쳐 무사 1, 2루의 기회가 만들어졌다.
이날 세 번째 타석에 들어서 아라우즈는 기본대로 번트를 대 두 명의 주자를 진루시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두 차례의 번트 시도가 모두 무위에 그쳤다. 최악이었다. 1볼 2스트라이크에서 자칫 진루는커녕 아웃 카운트만 늘리게 될 위기에 몰렸다.
아라우즈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번트도 성공시키지 못한 나에게 화가 났다. 그러나 잠깐이지만 시간을 갖고 생각했다. '그래 번트는 실패했지만 어떻게든 주자를 보내자'고 다짐하고 '컨택을 잘해서 번트 실패를 만회하자'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결국 믿기 어려운 상황이 펼쳐졌다. 아라우즈는 2개의 볼을 더 골라내 풀카운트를 만든 뒤 6구째 96.9마일(약 156km)짜리 포심 패스트볼이 몸쪽으로 높게 들어오자 그대로 잡아당겼고, 볼은 오른쪽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아라우즈의 3점 홈런으로 팀은 4-3으로 역전승을 거뒀다.
사실 아라우즈가 여기에서 홈런을 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미 114차례 메이저리그 타석에 서본 경험은 있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단 한 번밖에 홈런친 적이 없었고, 마이너리그에서도 1890타석에 들어서면서 단 30개 밖에 홈런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라우즈는 "이번 시즌 첫 홈런을 이런 순간에 치게 될 줄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라면서 "평생 잊지 못할 하루였다"라고 말했다. /lsboo@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