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기 KT 위즈 마운드에 ‘예비역’ 엄상백이 없었다면? KT 입장에선 상상도 하기 싫은 가정이다.
엄상백은 7월 상무 전역과 함께 후반기 KT 선발진에 합류해 3경기서 2승 무패 평균자책점 3.38로 호투했다. 복귀전이었던 12일 고척 키움전에서 5이닝 2실점으로 1군 분위기에 적응한 그는 20일 사직 롯데전에서 5이닝 2실점으로 6년만에 선발승을 맛본 뒤 26일 수원에서 SSG를 만나 6년만의 퀄리티스타트(6이닝 2실점)와 함께 개인 2연승에 성공했다.
최근 수원에서 만난 이강철 감독은 이른바 ‘엄상백 효과’ 상당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외국인투수 윌리엄 쿠에바스가 부친상으로 이탈한 가운데 엄상백 호투로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 감독은 “승패를 떠나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는 선수다. 여기에 성적까지 좋다”며 “기본적인 스태미나가 좋고 100개까지 던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본인이 (1군 복귀 후) 계속 알아가는 느낌”이라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엄상백은 덕수고를 나와 2015 KT 1차 지명된 사이드암 특급 유망주였다. 그러나 날카로운 구위에도 줄곧 제구 난조에 시달리며 좀처럼 잠재력을 터트리지 못했고, 결국 이강철 감독 부임 첫해인 2019년 26경기 2승 3패 평균자책점 8.04를 남기고 상무에 입대했다.
엄상백은 상무에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부담이 적은 퓨처스리그에서 비로소 자기 공을 던지며 제구 난조를 해결하고, 자신감을 되찾았다. 입대 첫해 10승 4패 평균자책점 1.68로 남부리그 2관왕(다승, 평균자책점)을 차지한 그는 올해도 11경기 6승 무패 1홀드 평균자책점 1.46으로 호투했다. 피안타율이 2할1푼8리에 불과했고, 사사구가 9개인 반면 탈삼진이 75개에 달하는 압도적 투구에 힘입어 ‘언터처블’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이 감독은 “변화구 제구가 달라졌다. 집중해서 던지면 치기 쉬운 공이 아니다”라며 “선발로 충분히 좋은 투수라고 본다. 그야말로 환골탈태라고 봐야 하나. 너무 바뀌었다. 믿고 보는 선발투수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KT는 당초 부친상으로 이탈한 쿠에바스의 복귀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엄상백을 선발진에 놔두면서 더블헤더 시 심재민을 대체 선발로 추가하는 플랜을 구상했다. 이 감독은 엄상백의 보직이 선발보다 불펜이 적합하다고 바라봤으나 어쩔 수 없이 팀 사정에 보직을 맞췄다.
그러나 전날 쿠에바스가 부친상의 아픔을 딛고 전격 KT 잔류를 택했다. 이로 인해 로테이션 내 수준급 선발투수가 6명으로 늘었고, 상황에 따라 엄상백을 필승조로 기용할 수 있는 선택지가 새롭게 생겼다.
이 감독은 “엄상백 카드가 있어 후반기 마운드가 유연하게 돌아갈 것 같다”며 “아무래도 팀에 늦게 왔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괜찮은 상태다. 선발을 하다가 필요할 때는 불펜으로 가면 된다. 지금 보면 중간으로 쓰기 아깝기도 하지만 이 쪽 저 쪽 잘 써야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선발과 불펜이 모두 가능한 엄상백이 있어 마운드 운영이 훨씬 수월해진 KT다. 잦은 우천취소 및 더블헤더로 선발 고민이 큰 다른 구단들과 달리 KT는 엄상백의 합류로 선발진과 불펜진 모두 탄탄한 전력을 꾸릴 수 있게 됐다. 이 정도면 상무에서 온 ‘용병’이라고 불러도 될 듯하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