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만한 동화 ‘슬의생2’, 사람 품은 5인방의 퇴근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1.09.17 10: 36

[OSEN=김재동 객원기자] 16일 마침내 율제병원의 불이 꺼졌다. 환자들의 파라다이스는 사라졌고 동화도 끝났다.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확연한 거리감을 느끼는 관계가 있다. 법정의 판사와 피고인, 고용주와 고용인, 부장과 사원, 사단장과 일병, 그리고 의사와 환자.
거리감의 정체는 공감부재다. 서로 미소짓고 악수한다손 서로의 진심을 헤아린다기보단 그냥 시늉이고 얼버무림에 그치기 십상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의 배경 율제병원에는 시늉 대신 진심이 흘렀고 얼버무림 대신 공감이 넘쳐났다. 그래서 동화고 ‘현실성 결여’라는 비판도 받았다.

물론 속물 흉부외과 의사 천명태(최영우 분)나 꼰대 신경외과 의사 민기준(서진원 분)등의 캐릭터도 있지만 돈벌이에 관심없는 이사장에, 사재 털어 환우돕기에 나서는 대주주에, 하루에 세 번도 출근하는 의사들이라니 확실히 세상 어딘가에 있을만한 병원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드라마속 율제병원은 환자들을 고쳤고 드라마밖에선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치유했다. 그 덕에 질투, 시기, 배반, 음모 없이 선의만으로도 성공한 드라마로 자리매김했다.
드라마의 성공은 99즈 5인방 캐릭터의 성공이라 할 만하다. 감담췌외과 부교수인 이익준(조정석)은 일종의 천재다. 수술도 잘하고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잘 부르고 병원내 모르는 사람없는 인싸에 환자가 말하지않는 속사정까지 캐치해내는 통찰력도 있다. 위트와 익살로 모두를 편안케해주는 배려심도 충만하다.그 통찰과 배려심이 완벽한 인간 이익준의 허방이 되기도 한다. 대학시절 채송화(전미도 분)에 대한 양석형(김대명 분)의 감정을 눈치챈 후 자신의 감정을 억눌렀다. 덕분에 20년 넘겨서야 자신의 사랑을 완수한다.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부인을 폭행하는 보호자의 위선을 눈치채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도 하지만 간이식이 필요한 딸을 두고 사라진 아버지에 대해선 섣부른 통찰로 인간의 이기심에 회의를 갖기도 한다. 2주만에 나타난 그 아버지는 딸에게 줄 자신의 간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지방간을 해결하고 나타난다.
익준 캐릭터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 완벽해져가는 익준으로 끊임없이 성장한다.
뇌수술 잘하는 신경외과 유일의 여교수 채송화는 병원내에서 완벽한 의사 모습을 보이지만 노래 하자에도 불구하고 보컬을 호시탐탐 노리는 뻔뻔함이 있다. 또 위로 오빠 셋 등쌀 때문인지 먹을 것만 보면 눈이 돌아가는 먹깨비이기도 하다. 신조어에도 취약하다. 그 허점이 그녀를 귀엽고 사랑스럽게 만든다.
전형적인 ‘츤데레’ 김준완(정경호 분)은 여군 소령 익순(곽선영 분)을 사랑하는 군면제자다. 평소 환자들로부터 ‘싸가지 없다’소리를 자주 듣지만 KTX도 예매 못하는 주제에 보호자없는 전신마비 환자의 말동무를 구하기 위해 SNS를 배우기도 한다. 주인공중 가족 에피소드가 하나도 없는 유일한 인물답게 외로움을 무척 타 정원(유연석 분)과 겨울(신햔빈 분)의 신혼집에도 얹혀 살 궁리까지 한다. 먹을 것 앞에선 채송화에 버금가는 전투력을 발휘한다.
소아외과 조교수인 정원은 율제병원의 실질적인 소유주다. 짠돌이 기질이 강하고 그렇게 아껴서 환우들을 위한 키다리 아저씨 노릇을 자처한다. 신부를 꿈꿨지만 장겨울과의 로맨스가 시작되며 그 꿈을 접는다. 5인방의 심부름꾼이며 식모인데 도대체 왜 자신이 그 처지인지 항상 이해못하고 넘어가는 허당끼 충만형이다.
산부인과 조교수 양석형은 사람 사귀기 힘든 성격이다. 별명은 곰이지만 섬세하고 예민하다. 자신보다 어린 여자와 바람피우던 아버지가 있고 실족사한 여동생이 있고 그 때문에 뇌출혈을 일으켜 다리 장애가 생긴 어머니가 있다. 그 어머니의 간섭으로 이혼한 경력도 있다. 99즈와의 교류가 탈출구였지만 추민하(안은진 분)라는 새 줄을 잡아 새 인생 개봉박두다.
나란한 중환자실에서 뇌사판정받은 아버지·남편을 붙잡고 오열하는 가족과 회생을 환호하는 가족들이 엇갈리는 공간, 인생의 희로애락이 한타령으로 얽힌 병원에 같이 아파하고 같이 기뻐하는 의료진이 함께한다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
율제병원에 노을이 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채송화 옆으로99즈 5인방이 모여든다. 채송화가 "어렸을 때는 해 뜨는 걸 보는게 좋았는데 이제는 해 지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라고 말한다. 그 말을 받아 이익준은 말한다. "왜 그런지 알아? 퇴근 시간이잖아. 집에 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좋은거야" 그렇게 마음 속에 사람을 품은 5인방이 퇴근했다.
지난 6월 17일 시청률 10%(닐슨코리아 집계)로 시작한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는 16일 14.1%로 막을 내렸다. 현실이 각박할수록 아름다운 꿈이 필요하다. 율제병원 동화 하나쯤 기억한다고 손해볼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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