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힘들 것 같은데요?”
지난달 말 잠실에서 만난 두산 김태형 감독은 “올해도 특유의 가을 DNA로 미라클이 이뤄질 것 같냐”는 취재진 질문에 위와 같이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두산은 6월 25일 김태형호 출범 이후 처음으로 5할 승률 사수에 실패(60경기 이상 기준)한 뒤 3달 가까이 7위에 머물렀다. 거듭된 부진 속 포스트시즌 마지노선인 5위와의 승차가 한때 4.5경기까지 벌어졌고, 반등은커녕 9월 4일 롯데와 공동 7위가 되며 8위 추락을 걱정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공동 7위 하락의 충격이 컸을까. 두산은 이튿날 삼성을 만나 6-5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반등의 계기를 마련했다. 돌이켜 보면 이는 ‘미라클 두산’의 서막이었다. 9월 5일 삼성전부터 전날 NC전까지 14경기 10승 3무 1패 승률 9할9리의 상승세를 앞세워 꿈만 같았던 5위를 넘어 단숨에 4위로 올라섰다. 이 기간 팀 타율은 2위(2할8푼9리), 평균자책점은 1위(2.64)로 투타 조화가 모처럼 완벽하게 이뤄졌다.

4위 도약의 가장 큰 원동력은 두산이 자랑하는 선발야구의 부활이다. 전반기 이영하, 유희관의 극심한 난조와 에이스 워커 로켓의 부상으로 로테이션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후반기 아리엘 미란다-로켓-최원준으로 이어지는 탄탄한 3선발에 곽빈이 가세했고, 이영하는 불펜으로 이동해 마침내 제 구위를 찾았다. 또한 최근 통산 100승을 거둔 유희관이 후반기 평균자책점 3.24로 반등하며 5선발이 완성됐다. 두산의 9월 선발 평균자책점은 KT에 이어 전체 2위(3.26)다.

타격코치 교체도 분위기 반전에 한 몫을 했다. 두산은 지난달 22일 오랫동안 1군 타격을 지도한 이도형 코치를 내리고 현역 시절 악바리로 유명했던 이정훈 코치를 올렸는데 타선이 끈기와 응집력을 되찾았다는 평가다. 김 감독은 “이도형 코치는 유한 스타일인 반면 이정훈 코치는 파이팅이 넘친다. 기술적으로 좋은 부분을 많이 갖고 계신다”며 “타격이 안 될 때 이도형 코치는 괜찮다고 조용히 격려하는 반면 이정훈 코치는 강하게 이야기한다. 물론 그렇다고 안타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선수에게 확신을 주는 부분이 있다. 분위기가 살아나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불과 3주 전만 해도 불가능할 것 같았던 5강 진입을 이뤄낸 두산은 이제 준플레이오프 직행을 향해 달린다 3위 LG와의 승차는 4경기로, 쉬운 도전은 아니지만 LG가 9월 들어 5승 2무 10패의 부진을 겪고 있고, 잠실 더비가 5경기 더 남아 있다. 두산은 김 감독 부임 후 라이벌 LG에 65승 3무 39패로 상당히 강했다.
두산은 2019년 선두 SK와의 9경기 승차를 뒤집고 정규시즌 정상에 오른 뒤 통합우승을 해냈고, 지난해에는 시즌 최종전에서 3위를 확정짓는 기적을 쓰며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그리고 올해 역시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해지자 귀신 같이 경기력이 살아나고 있다. 아직 시즌이 35경기 남아있지만 공동 7위에서 단독 4위로 올라선 자체가 미라클로 평가받기 충분하다. 두산 선수단 체내에 가을 DNA라는 게 확실히 있는 모양이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