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인 미래지상주의...패배 종용하는 '심준석 리그' 가치가 있는 것일까
OSEN 조형래 기자
발행 2021.09.29 13: 24

미래에 확실한 결과를 보장할 수도 없는 무언가를 위해 현재를 포기할 수 있을까. KBO리그는 ‘미래 환상주의’에 휘둘리고 있다. 과연 잠재력과 재능은 모두가 인정하지만 아직 프로 무대를 밟지도 않은 유망주를 선택하기 위해 당장을 포기하는 선택을 내리는 것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일까.
KBO리그는 2023년 신인 드래프트(2022년 개최)부터 연고지 1차 지명이 폐지되고 전면 지명으로 실시된다. 연고지 1차 지명이 사라진 상황에서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아마추어 유망주는 올 시즌 최하위 팀이 뽑게 된다.
직전 시즌 성적의 역순으로 진행되는 드래프트는 좋은 미래 자원’을 먼저 수급해 팀 전력을 강화시킨다는, ‘전력 평준화’의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이에 따라 고의적으로 성적을 떨어뜨려 좋은 선수를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상위 지명권을 얻는 ‘탱킹’이라는 꼼수도 나타나다. 사실 단일 리그도 아니고 선수 수급의 범위, 체계적인 팜시스템 등을 갖춘 메이저리그에서의 ‘탱킹’은 팀을 운영하는 방향성 중의 하나로 취급을 받고 있다. 휴스턴 애스트로스, 시카고 컵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등 근래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팀들은 ‘탱킹’의 가장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덕수고 심준석. /OSEN DB

하지만 선수 수급이 원활하지 않고, 또 단일 리그 제도 속에서 외국인 선수 성공 유무에 따라 성적을 끌어올릴 수 있는 KBO리그에서는 과연 ‘탱킹’이 의미가 있냐는 갑론을박이 발생한다.
내년에 열리는 KBO 드래프트에는 최대어가 등장한다. 고교 1학년 시절부터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뿌리면서 센세이션한 재능을 선보인 심준석(덕수고)가 드래프트에 나선다. 만약 드래프트 신청서를 제출한다면 단연 전체 1순위 지명이다. 팬들은 가을야구 진출이 힘들다면 차라리 꼴찌를 해서 심준석을 택하기를 바라고 있다. 팬들은 ‘심준석 리그’라고 부르며 조롱 아닌 조롱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은 ‘심준석 리그’를 동의하지 않는다. 아무리 하위권에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프로 무대에서 최고의 가치는 ‘승리’다. 하위권 팀도 ‘승리’는 간절하다.
한화 이글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 /OSEN DB
최근, 10위 한화의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은 팬들에게 받고 있는 개인 SNS 메시지를 공개했다. 고의 패배를 종용해서 최하위를 차지, 심준석을 얻어야 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받는다는 것. 수베로 감독은 발끈하며 이런 메시지를 ‘시간 낭비’라고 지칭했다. 2.5경기 차이로 약간 앞서 있는 9위 KIA의 맷 윌리엄스 감독 역시 지난 28일 창원 NC전을 앞두고 “팬들의 의견도 이해는 한다"면서도 "미래를 생각하는 시간은 현장의 감독, 코치, 선수들에게 사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당장 오늘의 승리만을 생각한다”라면서 ‘탱킹’보다는 ‘승리’에 초점을 뒀다. KIA 역시 탱킹으로 심준석 리그의 선두가 될 수 있지만 정규시즌 종료까지 무조건 최선을 다한다고 강조했다.
정규리그 성적은 기록에 남는다. 낮은 성적은 그리고 신인 지명권 순위로 연결이 된다. 더 높은 신인 지명 순위를 얻으면 팀의 미래를 밝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신인 지명 순위가 프로 무대에서의 성적과 동의어는 아니다. ‘탱킹’의 대가로 얻는 신인 선수들이 우승의 보증수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사례들로 증명이 됐다.  이정후(키움), 강백호, 소형준(이상 KT) 등 고교 졸업 이후 데뷔와 함께 프로 무대를 휘어잡고 팀의 주축으로 거듭나는 선수들은 극히 드물다.
KIA 타이거즈 맷 윌리엄스 감독 /OSEN DB
심준석은 올해 고등학교 2학년 시즌을 맞이했고 팔꿈치 염증으로 투구를 최근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가치는 최상이다. 'KBO버전' 유망주 랭킹이 매겨진다면 심준석은 단연 1등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베일이 제대로 벗져지지도 않은 선수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 그리고 뒤따르는 현장에 대한 비난은 프로야구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인 것과도 같다. 과연 현재 정규시즌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최상의 결과를 위해 땀을 흘리는 선수들의 플레이보다 심준석 리그를 위한 탱킹이 더 가치가 있을까. /jhrae@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