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태양’에 대한 멜랑콜리한 상상..국정원 배신자는 혹시 한지혁(남궁민)?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1.10.05 11: 21

[OSEN=김재동 객원기자]  MBC 금토드라마 ‘검은 태양’이 4일 스페셜 방송 '검은 태양 : 데이라이트'를 선보이며 1~6회까지 드라마 전반부 흐름을 정리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불현듯 드는 생각이 있다. 국정원의 배신자는 혹시 한지혁(남궁민 분)이 아닐까? 아니 성격상 배신자일 수는 없으니 배신자들에게 이용당한 건 아닐까?
이 드라마의 얼개는 기억을 잃은 국정원 비인가 TF ‘흑양’팀 요원 한지혁의 배신자 찾기다. 6회까지 진행되는 동안 배신자 찾기는 서수연(박하선 분)을 거쳐 국정원 해외파트 국장 강필호(김종태 분)까지 옮겨갔다. 또한 모든 음모의 막후로 국정원 퇴직자 모임 상무회도 거론됐다.

‘의심할 수 없는’ 주인공 한지혁을 향한 의심을 부추긴 인물은 요원명단 유출에도 불구하고 홀로 남아 활동하다 잠적한 블랙요원 장천우(정문성 분)다.
5회 스펙터클한 카 체이싱 끝에 장천우가 한지혁에게 전화를 걸어 말한다. “자신의 뒤를 한번 돌아봐요! 잘 봐둬요. 그것이 진짜 당신 모습이니까.” 한지혁은 트렁크를 보란 말로 이해해서 유제이(김지은 분)를 찾아내지만 장천우의 그 말은 좀 더 중의적인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어 장천우는 분노하는 한지혁에게 “넌 그런 분노가 아니라 미안함부터 느꼈어야 돼!”라고 적의에 가득 차서 말한다.
6회 한지혁과의 독대 씬에서 장천우는 “조급해할 필요는 없어. 기억이 안난다고 과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그 과거가 살아나서 니 목을 물어뜯을테니까!”라고 독설을 뱉는다.
기억을 잃기 전까지 한지혁은 장천우를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한지혁을 향한 장천우의 적의는 기억을 잃은 1년 동안에 형성됐단 말이 된다.
불곰프로젝트의 정보원 이춘길(이재균 분)이 단둥에서 보낸 마지막 비상연락 수신자가 서수연으로 밝혀지고 한지혁이 서수연을 폭행했을 때 나눈 도진숙 차장(장영남 분)과 강필호 국장의 대화도 미심쩍다.
부모의 피살사건과 그로 인한 해리성 기억장애를 빌미로 한지혁을 필사적으로 배제시키려는 강국장에게 도차장은 말한다. “그런 보고를 내게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은 게 자네 아닌가? 자네와 나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지.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말야.”
이에 대해 강국장은 부인하지 않은 채 “지혁이가 모든 기억을 되찾은 후에도 우리 쪽에 서줄 거라고 확신하십니까?”라고 묻고 다시 도차장은 비웃으며 “우리? 그 우리에 나도 포함되나?”라고 반문한다.
이 대화 끝에 도차장과 강국장은 확실하게 갈라선다. 이 둘의 관계에 시사점은 또 있다.
모든 사건의 시작은 도진숙 2차장이 김동환 과장(임철형 분)팀에게 지시한 선양작전에서 비롯된다. 선양팀이 전멸하면서 흑양팀이 파견된 것이다. 그리고 도차장은 그 작전을 일급기밀로 묶어 봉인했고 강국장은 한지혁을 상대로 그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또한 도차장은 국정원 해킹사건때 그 기밀이 국내파트 이인환 차장(이경영 분) 손에 넘어가선 안된다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강국장이 평소에도 한지혁을 향해 “너 마저 잃고 싶지 않아”란 말을 자주 쓰는 점. 또 하동균 팀장(김도현 분)이 떠보듯 “너 정말 1년 동안의 기억 다 잃었어?”라고 물었던 점도 시사적이다.
한지혁의 성격도 있다. 서수연은 총을 맞기전 교육생 시절 산악구보때 발목부상을 입은 자신을 두고 지혁 혼자 완주한 사례를 거론하며 “너는 사람과의 관계 따위가 아니라 그냥 임무 자체가 중요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앞서도 동료를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임무완수에만 매몰된 한지혁을 질타하고 경멸했었다.
어쨌거나 한지혁 배신자 추론의 얼개는 이렇다. 국내파트 이인환 차장과 해외파트 강필호 국장은 어떤 식으로든 상무회와 연관있다. 도진숙 차장이 추진한 선양작전은 마약밀매조직 화양파에 대한 공작으로 위장했지만 그 배후의 상무회를 겨냥했다.
화양파에 대한 흑양 팀의 보복작전이 마무리 되어 갈 즈음, ‘민간인 사찰’의 탈출구를 모색하던 이인환 차장과 궁지에 몰린 상무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북-중 국경지대 해외요원들의 명단유출사건이 준비된다.
명단유출의 오명을 쓸 희생양으로 한지혁이 선택되고 한지혁에겐 동료인 김동욱(조복래 분)·오경석(황희 분) 사살을 포함한 일련의 명령이 하달된다. 임무밖에 모르는 한지혁이다. 경력있는 블랙요원 둘은 믿었던 한지혁에게 손도 못쓰고 당한다.
의미심장한 대목은 또 있다. 단둥의 비트(비밀 아지트)를 찾은 이춘길은 그들만 아는 비트가 화양파에 노출된 데 대해 김동욱과 조복래를 의심하는 발언을 남긴다. 하지만 그 비트에는 한지혁도 있었다.
뒤늦게 명령의 부당함을 인지한 한지혁은 잠적해 개별 조사에 돌입하고 이 과정에서 상무회를 상대로 공작중인 장천우를 인지한다.(‘선양으로 건너간 지 사흘후’에 찍힌 장천우의 사진으로 미루어 이미 김동욱·조복래는 죽은 후로 보인다.)
장천우는 연인인 서수연의 동기 한지혁과 의기투합해 많은 성과를 올리지만 마지막 퍼즐을 끝내 찾지 못하고 이 과정에서 둘 사이엔 어떤 틀어짐이 생긴다. 아마도 이로 인해 장천우가 상무회에 노출돼 역으로 그들이 내민 목줄을 찰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을 수도 있다. 또 그로 인해 장천우가 한지혁을 증오하게 된 것이고.
마지막 퍼즐은 찾지 못한 채 다시 혼자가 된 한지혁은 임무에 언제나 올인하는 자신을 믿고 기억을 지운 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임무를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어쩌면 자신의 실수를 스스로 확인케 함으로써 아끼던 후배들을 제 손으로 사살한 자신에 대한 응징을 하려 했을 수도 있다.
이후 납치를 위장하기 위해 고문 흔적을 만들고 단서를 제공하는 모스부호와 부모님 기일인 5월 24일을 뜻하는 2시, 4시, 5시의 발신자 정보제한 전화를 걸어주는 등의 조력자를 예비한채 스스로의 기억을 지웠을 수 있다. 조력자는 서버관리실 요원 천명기(현봉식 분)일 수도 있겠다고 상상해 본다.
이럴 경우 한지혁이 탄 밀항선을 제보한 전화의 주인공은 누구냐는 의문점이 남는데 그건 작가가 차차 밝힐 것이고...
한편 아버지 사건과 흡사한 이력의 한지혁 사건을 캐던 유제이는 한지혁의 조직에 대한 배신을 눈치채고 딮페이크로 조작된 서수연 피격 CCTV 원본을 삭제시킨다. 혹은 국정원 서버를 해킹한 비슷한 처지의 최성균(안지호분)처럼 국정원에 대한 적의로 국정원과 한지혁의 공멸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이상의 상상과 추론은 드라마 속 갈피 잃은 한지혁과 국정원 조직 때문에 가능했다.
불가리아 태생 프랑스 철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그의 저서 ‘검은 태양(Soleil noir)’에서 “인간의 근간인 에로스와 타나토스(삶의 욕구/죽음의 욕구)는 등을 맞대고 태어난 쌍둥이다. 같은 자궁에서 태어났지만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이 쌍둥이의 균형이 무너진다면 한낮에 검은 태양이 뜬다. 그 검은 태양은 찬란한 빛을 모두 집어삼키고 어둠에 가라앉히는 멜랑콜리(우울)의 태양이다”라고 말했다.
우울증 약을 먹는 두 주인공 한지혁·서수연이 이끌어가는 드라마 ‘검은 태양’. 조직의 균형이 깨지고 조직원의 균형이 무너진 이 드라마의 기본 정서와 스토리 역시 멜랑콜리하다. 주인공 한지혁에 대해 의심을 해볼만할 정도로.
/zaitung@osen.co.kr
[사진] '검은 태양' 방송 캡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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