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태곤이 얘기좀 하고 싶다.”
김원형 SSG 랜더스 감독은 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더블헤더 제1경기를 앞두고 취재진을 만나 브리핑 끝무렵 “태곤이 얘기좀 하고 싶다”고 먼저 말했다. 김 감독이 먼저 하고 싶은 얘기를 꺼낸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라 취재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 감독은 내야수, 외야수 포지션 가리지 않고 뛰는 후배를 향한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동시에 전달했다. 미디어를 통해 말하는 것은 감독 본인 뿐만 아니라 팬들과 관계자 모두 오태곤의 가치를 다시 한번 지켜봐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15일 오태곤은 한화 이글스와 인천 홈경기 때 8회말 대타로 나서 2타점 적시 2루타를 때렸고, 경기 종료 후 수훈 선수로 인터뷰를 했다. 당시 그는 “올 시즌 처음으로 여기(인터뷰실)에 앉은 듯하다”고 했다.
승리 주인공이 되는 활약이 없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그런 기회 자체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MVP 인터뷰를 할 일이 적었던 것이다. 주로 대주자, 대타, 대수비로 나가면서 팀 승리에 결정적인 한 방을 보여줄 기회는 남들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대타로는 타격감을 잡기도 쉽지 않다.
또 오태곤은 당시 “경기에 많이 나가지도 않았고 득점권에서 많이 못 치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안타가) 나오겠지’라며 편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전으로 뛰는 선수들보다 한 타석 한 타석이 소중하고 부담이 되기도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던 것이다.
사실 백업으로만 뛸 기량은 아니다. 오태곤은 올해 초 제주도에서 진행된 스프링캠프 초반 주축 선수로 뛸 것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외야, 내야 가리지 않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주력도, 수비력도, 타격 능력도 좋은 선수다. 무엇보다 의지가 강한 선수다. 코칭스태프가 오태곤을 1군에 계속 두는 이유다.
하지만 올해 추신수가 팀에 합류하면서 오태곤은 최지훈, 한유섬, 고종욱 등 더 치열한 경쟁을 해야했다. 김강민도 건재한 상황. 그런 어려움에도 자신의 할 일을 찾고 있고 포기하지 않고 이를 악물었다. 오태곤은 지난 5일 LG와 경기에서 그간 쌓아둔 노력을 보여줬다.
외국인 타자 제이미 로맥이 2군에 간 사이 최근 1루수로 선발 기회를 얻고 있는 오태곤은 LG전을 통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1회초 선두타자 추신수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난 후 타석에 들어선 오태곤이 볼넷을 골랐다. 그 후 도루에 성공했고, 3루 도루까지 연달아 성공했다. 이후 한유섬의 안타가 나오면서 팀의 선제 득점 주인공이 됐다. 오태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경기였다.
다음 날 김 감독은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주전 외야수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경쟁을 할 수 있는 선수였다”며 “(추) 신수가 오기 전까지 경쟁을 하는 선수였는데 어쩌다 보니 백업이 됐다. 1루나 외야로 나가면 안정적으로 뛸 수 있는 선수인데 출장 기회가 적다”고 말했다.
물론 이 또한 선수가 이겨내야 할 일이다. 적은 기회조차 잡아야 프로 세계에서 살아 남을 수 있다. 하지만 김 감독은 그런 기회를 많이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것이다. 동시에 고마운 마음도 전했다.
김 감독은 “힘든 시즌일 것이다. 꾸준하게 2~3경기 선발 기회를 주지 못했다”면서도 “그럼에도 지금 알토란 같은 활약을 해주고 있다. 지금부터 보여주면 된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선수다”고 주목했다. 그런 김 감독의 마음을 읽었을까. 오태곤은 10월 들어 모두 선발 출장하고 있고, 매경기 안타를 생간하고 있다. 홈런 2개, 타점 4개 포함으로 팀 타선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knightjisu@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