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인생 최고의 하루였다. 그러나 머리부터 숙였다.
LG 트윈스는 7일 KIA 타이거즈와의 광주경기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대승의 비결은 선발투수 배재준(27)의 눈부신 호투였다. 8회 1사까지 4피안타 1볼넷 1실점를 기록했다. 탈삼진은 4개. 8-1 승리를 이끌고, 738일만에 선발승리를 따냈다.
5회까지는 완벽투였다. 모든 볼이 스트라이크존의 보더라인을 훝고 지나갔다. 큰 키에서 내려 꽂는 투구에 KIA 타자들이 꼼짝을 못했다.

6회말 첫 타자 박정우에게 유격수 내야안타를 내주고 퍼펙트가 깨졌다. 그러나 박찬호를 병살로 유도했다. 7회도 1안타를 맞았지만 영의 행진을 이었다.
완봉을 의식했는지 8회 류지혁 2루타, 1사후 박정우 볼넷을 내주고 흔들렸다. 폭투까지 던졌고 결국 한승택에게 좌전적시타를 맞고 첫 실점했다. 마운드에서 내려왔지만 최고의 투구였다. 류지현 감독은 경기내내 박수치기 바빴고, 동료들도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2013년 2라운드 16순위로 입단한 배재준은 좀처럼 빛을 내지 못했다. 팔꿈치 수술에 군복무를 거쳐 2018년에야 데뷔해 1승을 따냈고, 2019년는 19경기에서 3승4패를 기록했다. 2019년 9월 30일 잠실 롯데전에서 6이닝 무실점 호투를 펼쳐 가능성을 보였다.
그러나 2019년말 여자친구와 다투던 도중에 이를 말리던 시민을 때렸다. 심각한 일탈이었다. 피해자와 합의를 했으나 KBO는 2020년 1월 40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내렸다.
LG 구단은 무기한 자격정지라는 더 무거운 징계를 내렸다. 코로나19가 찾아온 2020년 내내 훈련장도 못나오는 자숙의 시간을 보냈고 연말에야 해제됐다. 개막 직후 4월 6경기 구원 등판해 복귀를 신고했다. 구원승도 따냈다.
그럼에도 존재감이 뚜렷하지 못한 뜸한 출장이었다 . 5월과 6월은 각각 2경기에 그쳤다. 그러다 9월부터 확장엔트리로 선발투수로 마운드에 올랐고 이날 최고의 투구를 했다. 이후 738일 만의 선발승리까지 따냈다.
그러나 웃지는 않았다. 인터뷰 룸을 찾은 승리투수는 대뜸 허리를 푹 숙이더니 "죄송하고 반성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지난 3월 복귀하고 시즌 말미에야 사과의 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긴장하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는 "과거 제가 저지른 잘못된 일로 많은 분들께 실망을 안겨드렸습니다. 많은 실망을 하셨을 팬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많은 반성과 뼈저리게 느낀 뉘우침으로 앞으로 그라운드에서 좋은 선수가 되기 이전에 좋은 인성으로 거듭나는 모습 보여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고 공식사과를 했다.
배재준은 "많은 잘못을 했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는 없다. 지금도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1년동안 경동고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나도 운동을 많이 했다. 힘들었지만 자숙 하면서 야구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깨달았다. 내가 정말 부족한 사람이라는 자책을 했다. 하나 하나 잘 준비했고 잘 봐주셔서 복귀할 수 있었다"며 자숙의 과정을 담담하게 밝혔다.
마지막으로 "오늘 경기는 (포수) 강남형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볼넷만 주지 말자고 던진 것이 주효했다. 감독님께서 경기 끝나고 '한 경기 잡아주어 고맙고 수고 많았다'고 하셨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기뻤다. 남은 시즌 내 개인 목표는 단 하나도 없다. 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 그것이 내 몫이다. 그렇게 마음 먹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sunn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