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당신얼굴 앞에서', 김민희→이혜영 그린 일상의 위대함(종합)[Oh!쎈 리뷰]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21.10.14 18: 48

 집으로 돌아온 배우 상옥(이혜영 분)은 낮에 잠깐 만난 감독 재원(권해효 분)이 남긴 말을 반복해서 들으며 곱씹는다. 그의 담담하고 명확한 문장 속에서 어떤 숨겨진 의미를 찾으려는 듯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그러고나서 그녀는 그의 말이 어이없다는 듯, 아니면 그런 자신이 한심하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다.
그 다음엔 잠들어 있는 동생 정옥(조윤희 분)에게 가서 꿈을 꾸고 있느냐고, 무슨 꿈을 꾸고 있느냐고 물어본다. 깊게 잠든 동생은 대답이 없다.
카메라는 평범한 상옥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관객들에게 일종의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분명 남이 던진 말을 반복해봤거나 잠든 가족들에게 가서 깨워보기도 했을 터이니. 이 두 장면이 ‘당신얼굴 앞에서’의 마지막을 수놓은 엔딩이다.

영화 스틸사진
‘당신얼굴 앞에서’라는 제목의 의미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바라보는 지금의 내 얼굴이거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가족 및 지인들의 앞에 놓인 내 얼굴을 가리킨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지금의 나는, 지금의 ‘내 얼굴’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오랜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동생 정옥 집에 잠깐 얹혀서 사는 상옥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그다지 특별한 게 아니다. 그리고 그다지 낯설지도 않고, 어색한 모습도 아니다. 그런데 그녀가 커피와 술을 마시고, 익숙하게 담배를 꺼내 피우고, 한국식으로 밥을 먹는 간결함 속에서 일상의 거대함, 위대함이 읽힌다.
영화 스틸사진
홍상수 감독의 26번째 장편영화 ‘당신얼굴 앞에서’(제작각본감독촬영편집음악 홍상수, 제작실장 김민희, 제작 영화제작전원사, 배급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는 한때 배우 생활을 했던 상옥이 귀국한 뒤 보내는 하루를 그린다.
홍상수 감독이 전작들 영화에서 보여줬던 내러티브의 방식에서 ‘당신얼굴 앞에서’도 크게 벗어나진 않는데, 한국에서 가족 및 지인들을 만나게 된 상옥의 일상을 천천히 따라가며 인간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담담하게 풀어내 재미를 안긴다.
앞서 언급한대로 귀국한 상옥이 한국에서 특별한 사건을 겪는 것은 없다. 그냥 평범하고 일상적이다. 홍상수 감독이 그녀를 둘러싼 문제적인 이벤트들을 늘어뜨려 놓은 것도 아니다. 술과 담배 같은 기호식품을 즐기는 인물들의 모습과 그들의 소소하고 자연스로운 대화를 길게 비추며 평범한 일상도 특별하게 만들었다.
영화 스틸사진
이번 영화에서도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반복과 변주가 돋보인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서 인물들이 같은 대사를 반복, 변주함으로써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그동안 김민희가 그 역할을 소화했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이혜영이 자신만의 ‘말맛’을 살려 그것을 표현했다.
이혜영은 특유의 카리스마와 걸크러시의 매력을 살려 극을 안정감 있게 이끌어나갔다.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로 손꼽히는 권해효도 전작과는 다른 얼굴을 들이밀며 영화에 생활감을 더했다.
일상의 단면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려는 의도는 흥미롭지만, 홍상수의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평이한 결말은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10월 21일 개봉. 러닝타임 8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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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스틸사진,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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