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한화의 순위는 10위 그대로이지만 내용은 꽤 많이 달라졌다. 특히 수비 변화가 눈에 띈다. 실책 숫자는 리그 최다 공동 2위(105개)이지만 인플레이 타구를 아웃으로 처리한 비율인 '수비 효율(DER·Defensive Efficiency ratio)' 수치는 리그 전체 3위(.692)로 상위권이다. 앞서 2019~2020년에는 이 부문 각각 9위(.665), 8위(.668)로 리그 하위권이었다.
그 중심에 역시 수비 시프트가 있다. 올해 한화가 처리한 아웃카운트 3488개 중 수비 포지션 위치를 옮겨 잡아낸 것이 146개로 전체 4.2%를 차지한다.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 야구의 상징이 된 수비 포지션 파괴 시프트는 이제 더는 파격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한화에 잘 녹아들었다.
수베로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면서 시프트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조성환(45) 수비코치도 숨은 공신이다. 수베로 감독은 평소 조성환 코치와 수비 파트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한국 야구 관련 이야기를 나누며 도움을 받고 있다. 과거 롯데 선수 시절 제리 로이스터 감독과 3년을 함께했던 조성환 코치는 외국인 감독과 소통에 능하다.

조 코치는 "시즌 전 감독님께서 KBO리그 타자들의 영상을 보신 뒤 무조건 시프트를 해야겠다고 확신을 갖고, 제게 의견을 물어봐주셨다. 저 역시 시프트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선수들을 모아 영상을 보여주며 시프트가 왜 필요한지 설명하는 시간도 가졌다. 투수들에게도 동의를 구했다"며 "내야 빈곳으로 타구가 빠지는 길목을 지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연습했다. 시범경기에서 확률이 좋았고, 그때부터 탄력을 받아 더 공격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선수들도 몸은 힘들 수 있겠지만 적응하면서 재미를 느꼈다"고 돌아봤다.
사실 단순 시프트가 아니었다. 3루 베이스를 아예 비운 채 유격수가 외야 우익수 앞에 서고, 내야수 4명 전원을 우측에 몰아넣는 등 기존 형태를 깬 극단 시프트가 주를 이뤘다. 카운트가 바뀔 때마다 위치를 옮기는 등 체력 소모도 컸다. 실패시 위험 부담이 큰 시도였지만 수년간 실패로 지치고 움츠러든 한화는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활력과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더 과감하게 시프트를 쓰면서 선수들의 의식 변화를 끌어냈다. 이제는 선수들이 알아서 시프트 위치를 잡고 카운트별로 옮겨다닐 만큼 선수 주도형으로 바뀌었다.

조 코치는 "감독님께서 열정적인 스타일인데 그런 모습을 팀에 이식시키고 싶어 하신다. 한 시즌 하면서 선수들의 소극적인 모습이 많이 없어졌다. 매사에 공격적이고, 진취적으로 하고자 하는 모습이 보였다"며 "(수비코치로서) 눈에 보이는 실책 개수는 전부 내 것이니 선수들에게 부담 갖지 말고 공격적으로 하라고 했다. 시프트로 체력 소모도 크고, 타격도 해야 하는데 수비 훈련을 빠지지 않고 해준 선수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진심을 전했다.
내년에는 1년간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보다 정교한 시프트를 준비한다. 조 코치는 "시프트를 할 때 (타구 방향을 분석한) 스프레이 차트부터 타구 속도 등 다양한 데이터를 참고한다. 영상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분석팀이 굉장히 디테일하게 영상 자료를 편집해서 좋았던 점과 그렇지 않았던 점을 바로바로 알려준다. 선수들과 단체 메신저 방에서도 이를 바탕으로 칭찬할 부분은 칭찬하고, 보완해야 할 점들도 이야기하고 있다"며 "한 시즌을 하면서 데이터가 쌓인 만큼 자료 양도 늘어났다. 그만큼 정확성도 높일 수 있게 됐다. 겨울 비시즌에 이와 관련한 작업을 이어갈 것이다"고 밝혔다.
올해도 최하위가 유력하지만 팀의 희망을 본 조 코치는 "내년 시즌 무조건 더 좋아질 것이다. 더 좋아져야 한다. 내년에도 성적이 안 나면 핑계 댈 것도 없다. 감독님도 1년간 많은 것을 느끼셨고, 내년에 조금 더 본인의 색깔을 낼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선수들도 올해 감독님과 처음으로 손발을 맞춰봤으니 내년에는 더 빛을 낼 것이다"고 기대했다.

선수 시절 최고 인기팀 롯데에서 뛰고, 코치로 두산에서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해본 조 코치는 한화에서 첫 시즌을 보냈다. 그는 "리빌딩 시즌이라 성적이 처지면 선수들만큼 팬들도 많이 힘드실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경기장에 오셔 더 큰 힘을 주신다. 팬들의 에너지가 선수들을 압도할 정도라 상당히 놀랐다. 선수들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팬들을 위해서라도 내년에 많이 이겨야 한다. 기대에 보답하는 시간을 당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책임감을 드러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