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들 빅게임은 전력이 아닌 경험이 승부를 가른다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그 동안 KBO 포스트시즌에서도 전력의 우위를 점하고도 경험에 밀려 고배를 마신 팀을 제법 볼 수 있었다.
지난 4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두산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도 그랬다. 당연히 객관적 전력은 LG의 우위였다. LG는 정규시즌 마지막까지 우승 경쟁을 펼치다가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직행한 반면 4위 두산은 와일드카드 결정전 2경기 혈투를 치르고 간신히 LG를 만나게 됐다. LG는 최종전 이후 나흘의 휴식이 있었고, 두산은 막판 순위싸움에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2경기나 치르며 핵심 전력들이 과부하에 걸린 상태였다.
그러나 1차전은 3위와 4위가 뒤바뀐 모습이었다. 3위는 각종 이점을 살리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고, 4위가 오히려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의 경험을 앞세워 순조롭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가장 큰 차이는 득점권 해결능력이었다. 두산은 좌완 특급 앤드류 수아레즈에 값진 2점을 뽑은 뒤 추가점이 필요했던 8회와 9회 3득점으로 쐐기를 박았지만 LG는 1회 2사 1, 2루, 2회 1사 2루, 3회 무사 1루, 4회 1사 1, 2루, 6회 2사 1, 3루, 7회 2사 만루 등 숱한 찬스를 살리지 못하며 4위에 기선을 제압당했다. 경기 초반 포수 유강남의 미숙한 수비와 8회 2루수 정주현의 홈 송구 실책도 뼈아팠다.
그리고 두 팀의 승부를 가른 또 하나의 결정적 장면. 바로 5회 비디오판독 결과에 따른 양 팀 사령탑의 신경전이었다. 상황은 이랬다. 두산이 1-0으로 앞선 5회초 무사 1루서 정수빈이 기습 번트를 시도했고, 타구를 잡은 포수 유강남의 1루 송구가 정수빈 왼쪽 어깨에 맞으며 무사 1, 3루가 됐다.
그러자 LG가 곧바로 3피트 수비방해와 관련한 비디오판독을 요청했다. 그리고 판독 결과 정수빈의 발이 1루 라인 안쪽으로 들어온 게 확인되며 타자주자 아웃과 함께 3루까지 진루했던 박세혁은 1루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이 때 두산 김태형 감독이 그라운드로 나와 이영재 주심에게 다가갔다. 규정 상 비디오판독 결과 항의는 이유를 불문하고 자동퇴장. 그러나 김 감독은 주심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그대로 돌아갔고, 이번에는 LG 류지현 감독이 나와 “(항의를 했는데) 왜 퇴장이 아니냐”며 강하게 어필했다. 심판진이 모여 항의가 아닌 질의였다는 내용을 전달했지만 류 감독이 이례적으로 격한 항의를 이어가며 경기가 약 9분간 중단됐다. 물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 9분은 LG에게 독이 됐다. 마운드에 있는 수아레즈를 비롯해 야수진이 쌀쌀한 그라운드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이후 박세혁의 도루와 진루타로 계속된 위기서 바뀐투수 정우영이 박건우에 치명적인 1타점 적시타를 헌납했다. 보통 단기전에서 사령탑의 돌발 행동이 경기 흐름을 종종 바꾸곤 하지만 전날 류 감독의 항의는 게임 체인저가 되지 못했다.
경기 후에도 4위 감독은 차분했다. 김태형 감독은 왜 판독 이후 그라운드로 나왔냐고 묻자 “내가 착각한 건지 모르겠는데 3피트 비디오판독은 심판 재량으로 하는 줄 알았는데 판독을 요청해서 물어봤다. 이영재 주심이 어필하면 퇴장이라고 했고, 난 그게 어떤 상황인지 물었다”고 덤덤한 태도를 보였다.
3위 사령탑도 항의를 길게 이어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류지현 감독은 “정규시즌 때 비디오판독은 감독이 어필하면 자동 퇴장된다고 해서 우리도 억울한 부분이 있어도 나가지 못한 적이 있었다”며 “그 부분을 이의 제기한 거고, 주심이 ‘어필이라기보다 물어본 상황이다. 그 부분(3피트)이 비디오 판독 대상이 되는 것이냐고 물었다’고 했다. 나는 (김 감독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으니 ‘자동 퇴장이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치열했던 잠실더비 1차전 결과는 두산의 5-1 승리였다. 공격, 수비에 사령탑 신경전까지 모두 우위를 점한 결과였다. 이제 두산은 1승이면 대구행 티켓을 얻고, LG는 1패면 가을이 이대로 종료되는 상황. 과연 2차전에서는 LG가 마지막 우승 경쟁의 품격을 되찾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역대 3전 2선승제 준플레이오프 1차전 승리팀의 플레이오프 진출 확률은 100%. 일단 두산이 유리한 상황이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