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야구라는 단기전에서 경험만큼 값진 자산은 없다. 아무리 좋은 외국인투수와 스타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어도 경험 앞에서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한다.
올해 가을은 두산 김태형 감독의 풍부한 단기전 경험이 유독 돋보인다. 2015년 두산 사령탑 부임 후 6년 연속 한국시리즈 및 7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로 얻은 경험을 십분 발휘해 연이은 도장깨기에 성공하고 있다.
2021 포스트시즌 앞두고 두산의 전력은 김태형호 7년 가운데 최약체로 평가받았다. 오프시즌 오재일, 최주환의 이적을 시작으로 10억원을 들여 잔류시킨 선발 유희관의 부진, 외국인투수 아리엘 미란다와 워커 로켓의 동반 부상 이탈 등으로 단기전 플랜B 가동이 불가피했다. 전력의 절반을 차지하는 외국인투수 없는 가을야구는 김 감독 부임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두산에겐 무려 7년 동안 축적된 가을 DNA가 있었다. 창단 첫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낯설었는지 첫 경기서 일격을 당했지만 2차전에서 대체 선발 김민규의 깜짝 호투와 정찬헌-한현희-최원태 등 선발진이 총출동한 키움 마운드에 무려 16점을 뽑아내며 첫 스테이지를 통과했다. 2차전에서 김재환, 양석환 등 도루와는 거리가 먼 선수들의 더블스틸 작전으로 1점을 뽑았는데 김 감독은 “원래 그렇게 하는 겁니다”라며 껄껄 웃는 여유를 보였다.

LG와의 준플레이오프는 김 감독 특유의 지략이 특히 빛을 발휘한 시리즈였다. 1차전의 백미는 비디오판독 이후 노련한 대처였다. 판독을 통해 정수빈의 3피트 수비 방해가 인정된 상황. 그러자 그라운드로 나와 주심에게 항의가 아닌 설명을 듣고 싶다는 뜻을 전하며 잠시 흐름을 끊었고, 이에 LG 류지현 감독이 왜 퇴장이 아니냐고 한참을 항의하다가 결국 야수들의 대기시간만 길어지는 역효과를 냈다.
2차전에서는 1-3으로 근소하게 뒤진 채 7회를 맞이했지만 이영하, 홍건희, 김강률 등 필승조를 휴식시키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경기를 3-9로 패하며 3차전 승부가 성사됐지만 이들이 휴식일을 포함 이틀을 푹 쉬었고, 결국 운명의 3차전에서 선발 김민규를 1이닝만에 내린 뒤 필승조를 2회부터 가동하며 LG 타선 봉쇄에 성공했다. 앞을 내다본 사령탑의 혜안이 빛난 시리즈였다.
이제 두산의 다음 상대는 키움, LG보다 더 강한 정규시즌 준우승팀 삼성이다. 이번에는 대구 원정이라는 장거리 이동까지 더해진 상황. 미란다는 아직도 등판이 불가능하며, 기존 선발 곽빈마저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5경기의 혈투로 선수단 모두가 지칠 대로 지쳤다. 이번에도 두산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다.
두산의 전략은 이전과 동일하다. 상황에 따른 대처가 최선의 공격이자 방어다. 김 감독은 준플레이오프가 끝난 뒤 삼성과 플레이오프 전략을 묻자 "딱히 전략을 미리 짜고 가는 건 없다. 이번에도 투수가 잘 던지면 승부가 되는 것이고 못 던지면 지는 것”이라는 간결한 각오를 전했다. 있는 전력으로 맞붙고, 경기 흐름에 따라 승부수를 던지겠다는 것이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준플레이오프에 이어 이번 시리즈 역시 상대는 가을야구가 처음인 허삼영 감독이다. 과연 김 감독의 지략이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backligh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