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에서 누가봐도 가장 작았지만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배포는 그 누구보다 컸다. ‘163cm 최단신’ 삼성 라이온즈 김지찬(20)이 포스트시즌 데뷔전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6년 만의 포스트시즌에 복귀한 삼성은 완패를 당했지만 김지찬의 활약은 위안거리였다.
리그 최단신 김지찬은 9일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2번 유격수로 선발 출장했다. 허삼영 감독은 구자욱, 호세 피렐라 등 주로 2번에 배치했던 중장거리 타자들 대신 김지찬을 포진시켰다.
허 감독은 “두산 선발 최원준과의 상대 성적(4타수 3안타)을 고려했고 단기전에서는 다득점보다 저득점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여러가지 복안을 가지고 2번에 배치했다”라고 설명했다. 김지찬은 데뷔 첫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지금은 크게 못 느끼지만 경기에 나서면 좀 떨릴 것 같은데 막상 경기를 하게 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기도 했다.

김지찬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켰다. 데뷔 첫 포스트시즌 무대를 놀이터로 만들었다. 그라운드를 마음껏 휘저으면서 강점인 기동력을 발휘했다.
1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맞이한 가을야구 첫 타석에서 볼넷을 얻어냈다. 이후 구자욱의 우중간 2루타 때 전력질주해서 홈까지 밟았다. 선취 득점을 만들었다. 이후 삼성은 호세 피렐라의 적시 2루타까지 더해 2-0의 리드를 잡았다.

그러나 2회초 3실점 하면서 경기 분위기가 넘어갔다. 2회 타석에서는 삼진을 당했지만 5회에는 1사 후 중전 안타로 출루해 기회를 창출했다. 안타 이후 김지찬의 독무대가 시작됐다. 구자욱의 타석 때 두산 마운드의 최원준의 신경을 끊임없이 거슬리게 했다. 도루를 의식한 듯 최원준은 초구를 던진 뒤 3개 연속 견제구를 던졌다. 2구를 던지고도 다시 견제구를 던졌다.
이후 구자욱이 파울을 때렸지만 김지찬은 견제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루 스타트를 끊기도 했다. 최원준과 김지찬의 신경전은 이어졌다. 결국 최원준이 던진 5번째 견제구는 악송구가 됐다. 김지찬은 2루로 향했다. 최원준에게 타격을 주면서 본래 목적이었던 2루 도루에 성공한 것과 같은 효과를 봤다.
김지찬의 움직임은 구자욱과 승부에도 영향을 줬다. 구자욱은 11구 승부 끝에 볼넷을 얻어내며 기회를 이어갔다. 강민호의 사구로 1사 만루 기회가 이어지며 삼성은 역전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오재일의 병살타로 점수를 뽑지 못했다. 김지찬 효과가 온전히 발휘되지 않았다.
6회말 2사 만루 기회에서는 직접 타석에 들어선 김지찬이다. 그러나 좌익수 뜬공으로 물러나며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9회에는 대타 최영진으로 교체되며 이날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김지찬은 포스트시즌 데뷔전에서 주눅들지 않았다. 우려했던 유격수 수비에서도 어려운 타구를 곧잘 처리하며 위험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 2-3으로 역전을 당한 2사 만루에서 호세 페르난데스의 빗맞은 땅볼을 잡은 뒤 정확한 러닝 스로우를 펼치며 이닝을 종료시켰다.
당찬 데뷔전을 치렀지만 팀의 패배까지 막지는 못했다. 이제 벼랑 끝에 몰린 채로 치르는 플레이오프 2차전. 김지찬은 팀의 위기에서 다시 한 번 그라운드를 휘젓고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까. /jhra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