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로맨스만 있는 줄 알았더니 30대 시청자들을 웃고 울리는 애환이 있다. 멜로 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에서 현실적인 깊이감을 선사하는 배우 송혜교의 이야기다.
13일 방송된 SBS 금토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이하 '지헤중') 2회에서는 하영은(송혜교 분)과 윤재국(장기용 분)의 이별 액츄얼리가 그려졌다. 특히 하영은은 로맨스를 떠나 생업에도 충실한 30대 직장인 여성의 현실적인 애환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이날 하영은은 친구 전미숙(박효주 분)과의 전화 통화에서 아버지의 퇴임식을 앞두고 200만 원에 달하는 양복을 3개월 무이자 할부로 결제한 일을 털어놨다. 그는 "다음 달도 마이너스야"라고 한숨 쉬면서도 "어떻겠어. 부모의 기대에 충족하는 효녀되려면"이라고 했다. 이어 "들어오는 건 깜찍한데 나가는 건 끔찍하다"라며 "조만간 내가 가장이야. 그래서 악착같이 버텨야해"라고 한탄했다.

그럴수록 전미숙은 하영은이 일 말고도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여유를 찾길 바랐다. 그러나 하영은은 "아서라. 남자가 아니어도 내 삶은 잠깐만 방심하면 쳐들어오는 셀룰라이트가 천지란다"라며 창문에 지친 몸을 돌아보며 종아리 마사지를 시작했다. 굳은 지방과 근육들에 폼롤러 동작을 흉내만 내도 비명이 나올 듯 했지만 하영은은 참아냈다. 그는 "버티자. 외모도 능력이다. 버텨야 한다"라며 외적 기준에 엄격한 편견이 있는 디자이너로서 성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하영은은 열심히 산다는 윤재국의 감탄에도 "열심히 사는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게 이거 밖에 없으니까"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친구이자 직장 상사인 황치숙(최희서 분)의 뒤치닥거리에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그 때로 돌아가게 될까 봐, 이렇게 암담하게 될까 봐 겁이 나서요. 굳은 살이 베기는 건 오래걸리지만 덧나는 건 순간이잖아요"라고 나름의 통찰을 고백하기도 했다.
현실적인 이유는 하영은이 윤재국을 밀어내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거듭 마음을 표현하려는 윤재국에게 "상사의 맞선남이잖아요. 이 나이에 윗분이 점지한 남자랑? 어우, 사양하고 싶네요"라고 밝혔다.
30주년 쇼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뒤에도 하영은의 현실자각은 계속됐다. 그는 친구들과 편하게 마시는 술자리에서도 결혼, 연애 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자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이 없는 사람들이거든"이라며 "남자니 사랑이니 나한테 그건 그냥 호르몬 장난질이야. 나 진짜 몇 년 안 남았어. 그 안에 승진이라는 심폐소생술을 받아야 살아나"라며 관심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친구 전미숙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하영은의 말에 "20대엔 돈이 없고 30대엔 집이 없고 마흔 코앞이니까 미래가 없고"라며 공감했다. 이에 하영은은 "내 삶의 피로가 내 몸의 페로몬을 앞지르기 시작하면서 나는 설렐 수가 없다"라며 사랑에 있어 건조하고 관조적인 생각을 늘어놨다.
하영은과 친구들의 현실적인 생각들은 그 자체로 시청자의 현실감각을 일깨웠다. 흔히 사랑을 소재로 한 드라마라면 얼마나 더 달콤한 사랑에 흠뻑 빠지게 만드는지가 관건이건만, '지헤중'은 현실을 멜로 안에 녹여내며 시청자들의 공감지수를 극대화시켰다. 이처럼 현실적인 고민들을 안고도 윤재국에게 끌릴 수밖에 없는 하영은의 상황이 허구적인 이야기라는 드라마의 상황에 오히려 당위성을 부여한 것이다. '현타(현실 자각 타임)'를 찍고 돌아 다시 현실이 아닌 드라마로 몰입하게 만드는 '지헤중'과 송혜교의 깊이감이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 monamie@osen.co.kr
[사진] SBS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