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우승팀은 뭔가 다르다. 곰의 탈을 쓴 여우, 김태형 감독의 두산에 줄줄이 무너진 앞선 팀들의 감독들이 뭔가 홀린듯 당한 반면 한국시리즈 MVP 출신 이강철 KT 감독은 작은 틈도 허락하지 않는다. 추격의 불씨 자체를 없애는, 희망의 싹까지 잘라버리는 강철 야구에 곰탈여우도 쩔쩔 매고 있다.
지난 15일 고척돔에서 열린 KT-두산의 2021 한국시리즈(KS) 2차전. KT가 6-0으로 넉넉히 앞선 7회 고영표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올 시즌 KT 토종 에이스로 활약한 고영표는 KS에서 불펜으로 보직을 바꿔 승부처에 쓰는 ‘키맨’으로 낙점됐다.
2차전을 앞두고 이강철 감독은 “고영표 투입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할 것 같다. 우리로선 고영표가 나갔을 때 확실히 이겨야 하는 카드다. 두산 이영하, 홍건희처럼 연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생각해서 활용해야 한다”고 아주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7회 나온 고영표는 1⅔이닝 동안 19개 공을 던지며 2피안타 무사사구 1탈삼진 1실점으로 막았다. 많은 공을 던지지 않아 큰 무리는 없었지만 6점차 스코어를 고려하면 필승 카드를 쓰기에 조금은 낭비처럼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경기 후 밝힌 이 감독 생각은 달랐다. 그는 “6점 차이도 금방이다. 두산도 방망이가 강한 팀이다. 막을 때 확실하게 막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영표를 올렸다”고 말했다. 장기 레이스인 정규시즌이면 몰라도 단기전은 작은 불씨가 어떻게 번져나갈지 모른다. 이 감독은 그마저 차단하고 싶었다.

마무리투수 김재윤을 6-1로 앞선 9회 투입한 것도 같은 맥락. 1차전 1이닝 19구에 이어 2차전 1이닝 10구로 연투를 했다. 남은 시리즈까지 생각해 두산의 타격감이 조금이라도 살아나지 않게 기세를 확실하게 꺾어놓았다. 1~2차전 연승으로 KT는 KS 초반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마운드 운용뿐만 아니라 야수까지 전체적인 경기 운영에서도 이 감독의 과감한 승부수들이 돋보였다. 2차전 5회 무사 1,2루 조용호 타석에선 번트 사인을 냈다 강공 전환했다. 두산 내야는 번트를 대비해 수비 위치를 옮겨놓았는데 빈곳으로 빠지는 우전 적시타가 됐다. 5득점 빅이닝 발판이 되면서 승기를 잡았다.

통산 152승의 레전드 투수 이 감독은 해태 왕조 시절 KS 우승 경험이 5번 있는 주역이었다. 특히 1996년 KS 6경기 중 5경기(2선발)에 등판, 3차전 완봉승 포함 2승1세이브 평균자책점 0.56으로 MVP를 차지했다. 역대 KS MVP 중 유일하게 1군 감독직에 올라 KS 승리까지 만들어냈다. 선수 시절 KS에서 져본 적 없는 승부사답게 감독으로도 우승까지 2승만 남겨놓았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