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닮은 사람’ 정희주 앞에 펼쳐질 ‘살아서도 지옥인 세상’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1.12.02 10: 05

[OSEN=김재동 객원기자]  파국은 삽시간에 찾아왔다. 정희주(고현정 분)를 찾아온 서우재(김재영 분)는 “내가 가질 수 없으면 아무도 가질 수 없다”며 희주의 목을 조르고 희주는 숨이 막혀가면서 부지불식간에  본인이, 혹은 엄마를 찾아나선 리사가 우재를 향해 흉기를 휘둘렀나보다.
JTBC 수목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이 1일 15화에서 클라이막스를 맞았다. 프롤로그에서 보여졌던 장면이다. 단란한 가족 그림에 흩뿌려진 선혈, 피를 닦아내려 정신없이 걸레질 하는 희주, 사체가 담겼음직한 트렁크를 끌고 마침내 호수에서의 유기까지가 이어지도록 희주의 나레이션이 흘렀었다.
“지옥에 대해 생각한다. 살아서도 지옥인 세상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의 지옥은 사랑하는 이가 나 대신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그러니 아직 지옥은 아니다.”

결국 서우재는 정희주가 사랑하는 이가 아니었다.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을 넘어 비록 우발적일지언정 제 손(혹은 자신의 딸 손)으로 죽이고 유기하는 동안에도 아직 지옥은 아니라고 스스로 되뇌었으니 말이다.
정희주 역시 서우재가 사랑하는 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서우재 본인은 사랑이라고 믿었을지 모르지만 지켜보기에 그저 괴이할 정도로 부풀려진 집착이고 소유욕일 뿐이었다.
어쩌면 두 사람은 사랑을 몰랐을 수도 있다. 정희주가 서우재의 아버지에 대해 “예술가 아버지로선 최고의 아버지였겠네요. 재능을 물려주면서 채울 수 없는 결핍도 물려줬으니까”라고 평한 대목은 시사적이다. 서우재가 물려받은 결핍에는 사랑에 대한 결핍도 포함돼 있었다. 과거의 것들과 결별할수록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왔다고 믿는 정희주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모두 이기적이다. 남편이 보내주는 돈으로 살며 내연남에게 육아와 가사를 맡기고 그림공부한 정희주나 결혼식을 앞두고 말 한마디 없이 잠적한 서우재나 정선우(신동욱 분) 말마따나 후졌다. 두 사람 모두 피해자인 구해원(신현빈 분)에게, 안현성(최원영 분)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는데 이해할 수 없을만큼 인색했다.
정희주는 딸 안리사(김수안 분)를 체벌한 기간제 미술교사 구해원을 첫 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본인이 선물한 초록색 코트를 보고서야 가난해도 빛을 발했던, 그래서 자신이 부러워했던 젊은 날의 해원을 기억해낸다. 해원의 웨딩사진에 들러리를 서기도 했으면서. 그 사진 속 해원의 남자를 내연남으로 만들기도 했었으면서...
어쩌면 과거와 끊임없이 결별해온 정희주로서는 당연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맺힌 게 많은 사람 기억이 더 선명하다”는 해원의 말처럼 정희주는 자신이 해원에게 가한 가해에 대해 무례하고도 몰염치하게 잊고 말았던 것이다.
서우재는 어떤가. 엄마와의 관계를 추궁하는 희주의 딸 리사 앞에서도 ‘폭풍의 언덕’ 속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에 빗대 설명하려들고 안현성 앞에서 안호수(김동하 분)의 아빠 행세를 하려드는 뻔뻔함을 보였다. 워더링 하이츠를 온통 비극의 땅으로 만들었던 히스클리프의 광기어린 집착을 답습이라도 하듯이.
이러한 정희주와 서우재의 이기심은 서로를 향해서도 비수를 겨눈다. 정희주는 블랙박스를 이용해 마치 서우재가 자신을 성추행하는듯한 장면을 연출해 갤러리 관장 이정은(김호정 분)에게 둘의 관계를 호도하고, 서우재는 버려지느니 차라리 죽여서라도 갖겠다는 광기의 소유욕을 발산한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죽이면서 그것이 제대로된 사랑이 아니라는 것조차 모르는 무지가 그와 그녀가 맞이한 파탄의 원인이다.
그런 무지는 주변도 망쳤다. 희주는 무시받는 며느리, 올케지만 지긋지긋했던 과거의 가난과 결별해 안도했었다. 그렇게 안주하려들 때 해원을 만났다. 자신이 떠나온 과거처럼 가난하지만 자신과는 달리 그 현실의 가난마저 긍정하며 꿈을 향해 나아가던 해원은 얼마나 예쁘고 빛났던가. 희주는 그 해원의 손을 잡고 그림의 꿈을 키워나갈 수 있었고 마침내 화가의 꿈을 이뤘다. 반면 해원은 희주가 잡아당긴 손길에 실연의 우울로 추락하고 말았다.
어머니 박영선(김보연 분)의 반대를 무릅쓰고 희주와의 결혼생활을 지키려던 현성은 서우재를 상대로 살인미수를 저질렀고 딸 리사는 엄마의 불륜으로 인해 엉망의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
서우재는 어떤가. “내가 빼앗긴 것들 전부 다 찾아오겠다”고 벼른다. 그에게 희주나 호수는 그가 빼앗긴 것들에 포함된다. 그 같은 적반하장의 소유욕이 계속 이어졌다면 해원, 현성, 리사에 이어 어린 호수마저 크나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지 모른다.
다행히 해원은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내려놓지 못하면 함께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윤상호(김상호 분)의 조언과 천천히 조금씩 다가가게 해달라는 정선우(신동욱 분)의 진심에 서우재란 평생의 짐을 내려놓는데 성공한다.
그렇게 해원은 악연의 굴레를 벗어났고 우재는 정희주의 손에 끝장났다. 그리고 남은 정희주. 그녀는 아직은 아니라고 했지만 마침내 살아서도 지옥인 세상을 마주하고 말 모양이다. 다름 아닌 그녀의 이기심과 배신이 만든 지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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