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의 간절한 외침, “케인, 빨리 깊은 잠에서 깨어나라”[최규섭의 청축탁축(淸蹴濁蹴)]
OSEN 조남제 기자
발행 2021.12.04 07: 12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 토트넘 홋스퍼는 진귀한 보배를 지녔다. 그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다는, 천하에 내세울 만한 날카로운 창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 개다. 토트넘이 “명가로서 우뚝 서는 데 버팀목이 되는 굳건한 존재”라고 자랑하는 두 창은 손흥민과 해리 케인이다.
토트넘은 둘을 천금과도 맞바꿀 수 없다며 애지중지한다. 각자로서도 무척 뛰어나지만, 하나로 어우러질 때 가공할 위력을 떨치는 둘을 어찌 떠나보낼 수 있겠냐는 마음을 구태여 감추려 하지 않는다. ‘영혼의 단짝’으로 불리는 둘이 만들어 낸 ‘1+1=2+α’의 상승효과를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둘이 힘을 합쳐 빚어내는 결실은 놀랍기만 했다.
손-케인 듀오의 진가는 객관적 수치에서도 단연 엿보인다. ‘찰떡궁합’의 힘을 마음껏 분출함으로써 경신을 눈앞에 둔 PL 통산 합작 골 기록이 대표적이다. 2015-2016시즌부터 호흡을 맞춰 온 둘은 지금까지 7시즌을 치러 오며 35골을 함께 엮었다. 디디에 드로그바-프랭크 램퍼드(첼시·이하 당시) 콤비가 세운 기록에, 단지 한 걸음 차일 뿐이다. 앞으로 두 걸음만 더 내디디면 PL 역사에 새 지평을 여는 금자탑을 쌓는다.

특히, 2020-2021시즌 활약상은 눈부셨다. 역대 한 시즌 최다 합작 득점(14골) 기록을 새로 세우며 사자후를 토했다. 그야말로 PL을 호령하는 포효는 우렁찼다. 지난 시즌 PL에서, ‘마음의 눈’으로 주고받는 듯한 절묘한 콤비 플레이는 으뜸의 볼거리였다.
손-케인 듀오가 환상적 호흡을 바탕으로 내뿜은 강렬한 빛줄기에, 앨런 시어러-크리스 서턴(블랙번 로버스)이 1994~1995시즌 밝혔던 빛은 퇴색했다.
케인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날 때, 손흥민은 더욱 나래 펼 수 있어
그런데 이상하다. PL을 휩쓸며 두려움과 놀라움을 안겨 주던 두 창의 날카롭고 매서운 모습을 찾기 힘들다. PL에선, 이번 시즌 단 한 개의 합작품을 만든 데 그치고 있다. 지난 10월 18일(이하 한국 시각) PL 8라운드에서 나온 합작 골이 유일하다. 전반 추가 시간에, 손흥민이 케인이 내준 컷백 패스를 받아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골문을 꿰뚫으며 이번 시즌 첫 합작품을 수확한 데서 한 걸음도 더 나가지 못했다.
당시엔, 뜻깊은 합작골로 평가받았다. 단순한 하나의 합작 골이 아니라, 7개월 10일간 18경기에 걸쳤던 기나긴 침묵을 비로소 깼기 때문이었다. 토트넘 팬들이 “지난 시즌 27라운드 크리스털 팰리스전을 끝으로 시작된 합작 무득점 행진에 마침표를 찍은 귀중한 첫 합심 작품이었다.”라며 반긴 배경이기도 했다.
그러나 끝이었다.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5라운드 46일이 지나는 동안, 두 창이 함께 엮어 내는 빛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케인이 깊은 잠에서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는 데에서 말미암은 흉황(凶荒)이다. 케인은 지난 시즌이 끝나고 이적설에 휩싸이며 팀 훈련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경기력이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팀에 녹아들지 못하고 겉도는 모습마저 드러내고 있다.
케인의 부진은 기록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번 시즌 팀이 치른 13경 가운데, 케인은 11경기에 출장해 1,008분을 소화했다. 출장 시간상으로 보면 팀 내 6위다. 상당히 많은 경기와 시간을 소화했다. 그렇지만 골과 어시스트는 각각 하나에 불과하다. 이 공격 포인트 모두 8라운드 뉴캐슬전에서 나왔다. 곧, 나머지 12경기에선, 그동안 뽐내 온 뛰어난 공격수로서 본능을 도무지 발휘하지 못했음이 엿보인다.
케인이 누군가? 2020-2021시즌 득점왕과 도움왕을 휩쓴 빛나는 주인공이었던 그였다. 35경기에 나서 23골 14어시스트의 풍성한 결실을 올렸던 그였지 않은가.
반면 손흥민은 이번 시즌에도 한결같은 몸놀림으로 건재를 뽐낸다. 12경기에서 1,052분(팀 내 4위)을 소화하며 5골 1어시스트를 수확했다. 지난 3일 13라운드 브렌트포드전에서 추가골을 터뜨린 데서도 나타나듯 꾸준한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PL 득점 순위에서 공동 9위를 달리는 손흥민은 물론 팀 내에선 선두 주자다. 팀 득점(13골)의 38.5%에 이를 만큼 손흥민이 토트넘의 공격 비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물론 으뜸이다. 37경기를 소화하며 17골 10어시스트의 풍년가를 노래했던 지난 시즌에 못지않은 활약상이다.
이번 시즌에, 듀오가 그리는 상반된 활약 곡선은 골 결정력 순도에서도 나타난다. 손흥민과 케인은 경기당 2.3개의 슈팅을 날리고 있다. 그런데 골 수는 확연히 다르다. 손흥민이 5골인데 비해, 케인은 1골이다.
이 곡선은 팀 전체 득점 비중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지난 시즌에, 손-케인 듀오는 40골을 터뜨려 팀 전체 득점(68골)의 58.8%를 차지했다. 올 시즌엔, 6골(46.2%)로 50%에도 이르지 못한다.
지난 시즌에, 둘은 홀로서도 돋보일 만치 왕성한 활약상을 펼쳤다. 둘이 각자 거둬들인 전과가 PL 최상위권에 당당히 자리매김했을 정도다.
그러나 손흥민과 케인의 진정한 가치는 하나가 됐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둘이 창출한 시너지 효과는 토트넘 전력 상승과 성적 극대화의 주춧돌이 됐음은 그동안 충분히 입증됐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릴 수밖에 없다[脣亡齒寒·순망치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케인은 손흥민이 지닌 힘을 제대로 분출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하루바삐 케인이 깨어나 다시 왕성한 활동을 펼쳐야 한다. 손흥민과 케인, 두 창이 다시 어우러져 PL 마당에 번뜩일 때, 토트넘이 힘을 받고 앞으로 힘차게 나갈 수 있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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