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연속 170이닝 이상을 소화하는 철완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렇게 자존심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자랑스러웠던 훈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장기 계약의 걸림돌이 되는 모양새다.
KIA 타이거즈의 지난 10년 간 에이스는 누가 뭐라고 해도 양현종이었다. 2010년대 타이거즈 구단 역사의 중심에 있었구 꾸준하게 부상도 없이 마운드를 지켰다. 지난 2014년부터 2020년까지 7년 연속 170이닝 이상을 소화했다. 2016년에는 200⅓이닝을 던졌다. 같은 기간 양현종의 이닝에 근접하는 기록을 쓴 투수 조차 없다. KIA의 에이스이자 대한민국의 에이스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투수의 어깨와 팔꿈치는 소모품과 같다는 게 정설. 많이 던질 수록 어깨와 팔꿈치의 피로는 쌓이고 관절과 근육의 회복 속도가 이전과 달리 원활하지 않다. 투수들이 오랜 시간 동안 꾸준하게 활약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였다. 그래도 양현종은 7년 간 꾸준하게 제 몫을 다했다.

그러나 지난 2020년의 기록은 ‘소모품 이론’이 양현종에게도 적용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31경기 등판해 172⅓이닝을 던졌지만 11승10패 평균자책점 4.70으로 부진했다. 풀타임 선발로 나선 뒤 가장 나쁜 평균자책점이었다. 누적된 피로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많았다.
대신 올해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것이 양현종에게는 사실상의 안식년이 됐다. 기회를 받지 못하면서 꿈을 완벽하게 이뤘다고 보기 힘들었지만 공을 많이 던지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서 35⅓이닝, 트리플A에서는 45이닝 밖에 던지지 않았다. 도합 80⅓이닝이었다. 본의 아니게 양현종은 그동안에 쌓인 팔과 어깨의 피로를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시즌이 됐다.
양현종은 1년 간의 메이저리그 도전을 뒤로하고 KIA로의 복귀를 선언했다. KIA도 돌아오는 양현종을 맞이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 프리에이전트(FA) 자격 선수지만 사실상 독점 입찰이었다. KIA는 양현종을 향한 대우를 고민했다. 그동안의 헌신만으로 계약을 맺을 수만 있다면 구단도 고민이 크지 않았을 터.
하지만 FA 계약은 과거 활약에 대한 보상과 미래 성적에 대한 기대치를 모두 담아야 한다. 최근에는 미래 가치에 좀 더 많은 비중을 두는 추세다. 특히 투수라면 어깨와 팔꿈치의 피로, 나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KIA는 이 고민이 담긴 제안을 양현종 측에 건넸다. 총액은 100억 안팎의 계약이지만 보장액보다 인센티브가 더 많은 계약 조건이었다. 하지만 양현종 측은 납득하지 못한 듯 했고 “서운하다”는 발언이 알려지기까지 했다. 여론은 비난의 화살을 양현종에게 당겼다. 올해가 사실상 안식년이었고 구단을 대표하는 투수라고 할 지라도 이미 최전성기를 지났고 만 34세를 맞이하는 투수의 대형 계약은 부담이 컸다.
KIA는 앞서 2015년, 역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돌아온 윤석민에게 4년 90억 원의 계약을 안겼다. 만 29세~32세 시즌을 보장하는 계약이었다.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였다. 윤석민은 어깨 부상으로 고전했다. 2015년 2승6패 30세이브 평균자책점 2.96을 기록했지만 2016년 16경기 출장에 그쳤고 2017시즌을 통째로 쉬었다. 2018년 돌아왔지만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흑역사’의 선례를 안고 있기에 KIA 역시 부담이 크다. 특히 윤석민은 양현종보다 젊었던 시기에 거액의 계약을 맺었지만 모두가 웃지 못한 결말을 맞이했다.

윤석민 외에도 다른 구단으로 눈을 돌려도 비슷한 나이대에, 거액의 장기 계약을 맺은 투수들이 씁쓸한 결말을 맞이한 경우가 많았다. 장원준이 두산과 2015시즌을 앞두고 4년 84억 원에 계약했고 만 30세~33세 시즌을 보장하는 계약이었다. 2015~2016년 통합 우승에 기여했다. 나름대로 성공으로 평가 받았지만 결국 계약 말미에는 좀처럼 활약하지 못했고 두 번째 FA 선언도 하지 못한 채 1군을 오가는 투수로 전락했다.
차우찬은 LG와 지난 2017시즌을 앞두고 4년 95억 원에 계약을 맺었다. 현재 투수 FA 최고액이다. 차우찬 역시 2017년 10승 7패 평균자책점 3.43을 기록했지만 이듬해 평균자책점은 6.09였다. 2019년 13승8패 평균자책점 4.12로 반등했지만 이후 어깨 부상이 발생했다. 올해를 앞두고 두 번째 FA 계약까지 체결했지만 어깨 수술로 내년 등판이 불투명하다.
양현종과 같은 나이대에 장기계약을 맺은 사례는 지난 2015년 삼성 윤성환이 있다. 당시 4년 80억 원에 계약하면서 만 34세~만 37세를 보장 받았다. 계약 4년 동안 110경기 45승36패 평균자책점 4.62의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계약 마지막 해인 2018시즌 평균자책점은 6.98로 치솟았다. 80억 원에 걸맞는 몸값을 했느냐는 물음에는 부정적인 답변이 돌아올 수밖에 없다.
양현종에게는 그동안 팀에 기여한 부분들이 반영이 안된 조건이 서운할 수도 있다. 그러나 KIA도 어쩔 수 없었다. 여러 사례들을 참고하면서도 에이스를 대우할 수 있는 묘안을 찾으려고 했을 것이다. 과연 KIA와 양현종은 새로운 국면 속에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계약안에 합의할 수 있을까.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