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KBO리그에서 내부 FA를 가장 빼앗긴 팀은 두산이다. 지난 2000년 FA 시장이 열린 뒤 모두 14명의 내부 FA 유출이 있었다. 매년 겨울마다 두산발 FA들의 이적이 연례 행사처럼 느껴질 정도.
그런데 두산은 FA 유출 후유증이 크지 않았다. 2009년 지명타자 홍성흔이 롯데로 이적했지만 최준석이라는 대체 자원이 있었다. 2014년 유격수 손시헌과 중견수 이종욱이 NC로 떠났지만 김재호와 정수빈이라는 대안이 있었다. 2015년 시즌을 마친 뒤 김현수가 메이저리그로 떠나자 김재환과 박건우가 외야에 등장해 왕조 시대를 이어갔다.
2019년에는 포수 양의지가 NC로 이적했지만 주전급 백업이었던 박세혁이 주전으로 올라서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1루수 오재일이 삼성으로 떠났으나 LG에서 트레이드로 데려온 양석환이 단숨에 그 자리를 메웠다. 늘 대체 자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부 FA 협상 전략에서도 확실한 선택과 집중을 취할 수 있었다.

올 겨울에는 박건우가 NC로 이적했지만 내년 시즌에도 두산에는 대체제가 나올 것이란 믿음이 있다. 그만큼 준비가 잘 되어 있다. 두산이라 백업이라는 평가를 받은 김인태와 박건우의 FA 보상선수로 데려온 강진성이 우익수 자리를 두고 경쟁한다.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올 유망주 김대한까지 대체 후보들이 넉넉하다.

FA 14명을 빼앗기고도 잘 버틴 두산과 달리 롯데는 걱정이 먼저 앞선다. 롯데는 두산 다음으로 많은 11명의 내부 FA를 잃은 팀이다. 4년 전 포수 강민호(삼성)에 이어 올 겨울에는 외야수 손아섭(NC)을 붙잡지 못했다.
지난 24일 손아섭과 NC의 계약이 발표된 뒤 5일 지났지만 여진이 가라앉지 않는다. 15년간 응원해온 지역 출신 선수를 잃은 팬들의 허탈감이 크다.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감성적인 요소를 걷어내고 봐도 전력에 심대한 마이너스가 우려된다. 이미 4년 전 강민호를 놓친 뒤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린 롯데라 손아섭 빈자리도 커 보인다.
롯데는 4년 전 FA 시장에서 주전 포수 강민호의 삼성 이적을 지켜봤다. 다음 대안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우려대로 강민호가 떠난 뒤 롯데는 안방이 완전히 무너졌다. 나균안, 안중열, 나원탁, 김준태, 정보근, 지시완 등 젊은 포수들이 번갈아가며 기회를 받았지만 어느 한 명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2021년에는 지시완이 공격에서, 안중열이 수비에서 안정감을 보이면서 포수진이 어느 정도 정비된 모습을 보였다. 두 포수 모두 나이가 26~27세로 젊어 향후 성장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강민호가 떠난 뒤 허비한 시간이 크다.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로 시련의 시간이 이어졌다. 포수진만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치명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손아섭이다. 내년이면 만 34세가 되는 손아섭은 올해 장타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전성기 같은 중장거리 타격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여전히 3할 타율과 4할 출루율을 보장하는 검증된 타자다. 유망주 추재현이 대체 후보 1순위로 꼽히는 가운데 김재유, 신용수, 장두성 그리고 군복무를 마친 고승민 등이 내년부터 손아섭 빈자리를 메워야 한다.
이들 중 누군가 또는 여럿이서 잠재력이 터지면 다행이다. 하지만 롯데는 강민호에 앞서 2013년 김주찬을 KIA에 빼앗긴 뒤 주전 좌익수를 찾지 못해 3년간 헤맸다. 2015년 투수 장원준이 두산으로 떠난 뒤 2년간 규정이닝 토종 선발이 없어 고전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2년 주전 유격수 김민재가 SK로 이적한 뒤 2004년까지 최하위에 머물러야 했다.

확실한 준비가 돼 있어야 대안으로 생각한 선수도 대체자가 될 수 있다. 백업으로 수년간 1군을 경험한 두산의 대안들과 달리 롯데는 대안들은 늘 준비 기간이 짧았다. 내년 두산의 박건우 대체 1순위 김인태는 1군에서 327경기의 경험을 쌓았지만 롯데의 손아섭 대체 1순위 추재현은 1군에서 이제 109경기를 소화했다. 김재유와 신용수는 각각 195경기, 93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