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올 시즌 호세 피렐라(좌익수)-박해민(중견수)-구자욱(우익수)으로 외야진을 구성했다. 지난해까지 좌익수로 뛰었던 김헌곤의 입지가 좁아졌다.
그는 "늘 그래 왔듯 마음 편히 해왔던 적은 없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팀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나의 역할"이라며 "백업으로 시작하겠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든 주어진 여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발바닥 상태가 좋지 않았던 피렐라가 외야 수비보다 지명타자로 출장하는 경기가 늘어나면서 김헌곤이 다시 기회를 얻게 됐다. 올 시즌 118경기에 출장해 타율 2할8푼1리(317타수 89안타) 4홈런 27타점 38득점 5도루를 기록했다.

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박해민이 LG로 이적하면서 삼성 외야진의 개편이 불가피해졌다. 팀내 선수 가운데 외야 수비 능력이 가장 뛰어난 김헌곤이 중견수 후보 0순위로 꼽힌다.
김헌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현실적으로 백업으로 시작할 거라 생각했다. 올 시즌 이렇게 많은 경기를 뛸 수 있을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내년에도 마찬가지다. (박)해민이의 공백이 있지만 제 자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기 출장 여부는 제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자신을 낮췄다.
이어 그는 "해민이의 수비 공백을 메우는 게 쉽지 않겠지만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 공백이 느껴지지 않도록 모든 팀원들이 열심히 할 것"이라며 "어느 포지션이든 자신 있다. 어릴 적부터 외야수만 해왔으니까 좌익수, 중견수 모두 괜찮다"고 덧붙였다.

올 시즌을 되돌아보면 만족보다 아쉬움이 더 크지만 스스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립했다는 건 소득이었다.
그는 "올 시즌에도 타격 페이스가 올라왔는데 부상으로 빠진 적이 있었다. 선수는 기록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변명이 된다. 제 실력이 부족했다"면서 "시즌 후반 들어 제가 어떤 유형의 타자가 돼야 할지 방향을 정하게 됐다. 야구에 정답은 없지만 저는 컨택트형 히터로 상대 투수가 까다로워하는 타자가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전 삼성 내야수 신동수는 자신의 SNS 비공개 계정에 팀 동료와 코치를 향한 비하 발언, 코로나19와 관련해 대구 지역 비하, 미성년자 성희롱, 장애인 조롱 등 각종 막말을 쏟아냈다.
당시 대상을 가리지 않고 '모두까기' 모드였던 신동수가 유일하게 칭찬한 인물이 김헌곤이었다. 그는 원정 숙소에서 밤늦게 방망이를 휘두르는 김헌곤의 사진을 게재하며 "현재 시간 새벽 1시 헌곤이 형은 하루 종일 야구 생각을 하다가 방에서 30분째 스윙중"이라고 글을 남겼다.
그동안 '야구밖에 모르는 바보' 이미지가 강한 김헌곤은 비움의 미학을 깨달았다. 백정현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정현이 형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정현이 형과 함께 여행을 떠나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게 많다. 야구가 잘되든 안 되든 그 속에서 배우는 게 있기 때문에 '그냥 하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동안 야구가 잘 안 되면 인간으로서 가치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는데 정현이 형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야구를 잘하든 못하는 저라는 건 변함없다는 걸 느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김헌곤의 말이다.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의 신망이 두터운 김헌곤은 차기 주장 0순위로 꼽힌다. 언제나 겸손한 모습을 보인 그는 주장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주전 멤버가 주장을 해야 하는데 저는 항상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시켜주신다면 꼭 해보고 싶다". 김헌곤은 고등학교, 대학교, 상무 시절 주장 경험이 있다. 이쯤 되면 '준비된 주장'이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다.
김헌곤은 다음 시즌을 잘 마치면 데뷔 첫 FA 자격을 얻게 된다. "너무 신기하다. 제게 FA 취득은 남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신기하고 그동안 열심히 해왔구나 하는 기분이 든다. 돈에 대한 욕심보다 야구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게 김헌곤의 말이다.
김헌곤은 이어 "정현이 형이 FA 계약 후 정말 열심히 훈련한다. '내가 잘해야 나이 많은 선수들이 FA 자격을 얻게 되더라도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하셨다. 정말 감동이었다. 정현이 형이 좋은 선례를 남겨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늘 그렇듯 김헌곤에게 수치상 목표는 없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 생각이다.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열심히 하겠다". 좋은 선수 이전에 좋은 사람인 김헌곤이 다음 시즌에 커리어 하이 시즌을 완성하며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받길 김헌곤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바라고 있다. /wha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