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불펜 전환까지 고려됐던 미운오리는 어떻게 통합우승을 이끈 에이스가 될 수 있었을까.
윌리엄 쿠에바스는 KT의 창단 첫 통합우승을 이끈 일등공신이다. 선두 싸움이 한창이던 10월 평균자책점 2.16으로 선발진의 중심을 잡은 그는 사상 첫 타이브레이커에서 이틀 휴식 투혼을 선보이며 정규시즌 우승을 견인했고,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을 맡아 7⅔이닝 1실점 승리로 4승 무패 통합우승의 발판을 놨다.
그런데 사실 쿠에바스가 시즌 처음부터 이렇게 좋은 모습을 보인 건 아니었다. 냉정히 말해 올림픽 휴식기 전까지 그는 마법사 군단의 미운오리였다.

KT 3년차를 맞이한 쿠에바스는 초반 10경기서 잦은 기복에 시달리며 평균자책점이 6점대까지 치솟았다. 이후 6월 19일 수원 두산전에서 6⅓이닝 6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자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이강철 감독이 불펜행을 제안했다. 다양하고 위력적인 구종을 갖고도 강한 자기 주관 탓에 비효율적인 투구를 일삼는 태도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쿠에바스는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난 불펜보다 선발이 더 적합한 투수”라며 선발진 잔류를 고수했다. 대신 감독과의 면담을 통해 보다 진중한 투수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했다.
이른바 ‘강철 매직’은 곧바로 효과를 봤다. 쿠에바스가 6월 25일 대전 한화전 5이닝 무실점 승리를 시작으로 6이닝은 기본인 에이스급 외인투수로 거듭난 것. 이전과 비교해 눈빛은 진중해졌고 세리머니는 작아진 결과였다.
하지만 8월 자신을 보기 위해 한국을 찾았던 아버지가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며 호투를 이어갈 수 없었다. 구단의 배려 속 엔트리에서 제외돼 보름 가까이 부친 곁을 지켰지만 결말은 새드 엔딩이었다. 당시 한 달도 안 돼 체중이 5kg 빠질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쿠에바스는 선수단의 응원 속 다시 글러브를 착용했다. 고국 베네수엘라행이 아닌 KT 잔류를 택한 뒤 10월 평균자책점 2.16을 비롯해 두 달 동안 로테이션을 든든히 지키며 팀의 타이브레이커행에 큰 힘을 보탰다.
그의 진가는 145번째 경기에서 제대로 발휘됐다. 10월 28일 NC전에서 7이닝 2실점 108구를 던진 뒤 불과 이틀밖에 쉬지 못했지만 KBO리그 출범 후 처음 열린 삼성과의 1위 결정전에 선발 등판해 7이닝 99구 투혼을 발휘했다.
허구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나흘간 207구를 던진 그를 보고 “최동원이 떠오른다”며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그의 희생은 KT의 창단 첫 정규시즌 우승으로 이어졌다.
감독의 신뢰를 제대로 얻은 쿠에바스는 에이스의 상징인 한국시리즈 1차전 선발이라는 중책까지 맡았다. 당시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시작해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두산 타선을 7⅔이닝 동안 1실점으로 묶으며 승리투수가 됐고, KT는 이를 동력으로 삼아 4승 무패 압도적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미운오리에서 최동원급 에이스로 변신한 쿠에바스는 내년 시즌에도 KT 유니폼을 입고 통합 2연패에 힘을 보탠다. 30일 오전 전년보다 10만달러 상승한 총액 110만달러에 재계약을 맺었다. /backlight@osen.co.kr